본 글은 스티브잡스 헌정 번역 글입니다. 맥매니아 윤종웅님과 용환성님께서 번역을 해주셨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헌정 번역 참여하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원문 : Businessweek “Scott Forstall, the Sorcerer’s Apprentice at Apple”
스캇 포스텔, 애플 마법사의 후계자
iOS의 수석부사장은 그의 멘토인 Steve Jobs와 많은 부분 비슷하다. 똑똑하고, 깔끔한 발표력과 집요한 공격형으로, 애플의 정상 유지에 있어서 딱맞는 적임자로 보인다.
포스텔의 애플 11월 4일 이벤트 발표
스티브 잡스의 악화된 건강에 대한 관심은 10월 4일 캘리 포니아, 쿠퍼 티노에 본사에서 열린 애플 프레스 이벤트(AAPL) 에도 영향을 주었다. 애플은 새로나온 아이폰4S 로 관심을 집중시키고 싶었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애플의 창업자의 부재는 무시할 수 없었다. 객석의 맨 앞줄의 맨 오른쪽 좌석은 검은 바탕에 밝은 흰색 문자로 프린트된 – 예약석-이라고 표시된 채 덩그러니 비어있었다. 아마도 병약해진 이 시대의 아이콘에 대한 최소의 예의처럼 느껴진다. 회사의 새로운 최고의 경영자인 팀 쿡이 90 분 행사의 첫 순서를 진행했다. 그러나 그는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뒤늦은 추측이지만 아마도 이런 우울한 분위기를 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한 번도 잡스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새로운 아이폰의 커튼을 열었보인 애플의 노장 마케팅 수석, 필 쉴러 역시, 또한 새로운 웹 스토리지 시스템인 iCloud에 대해 발표한 인터넷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매니져인 에디 큐 역시 잡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경영진들은 잡스의 상황이 매우 어둡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잡스는 그 다음날 오후 3 시경 세상을 떠났다.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추모와 찬사가 지속되고 있다.
기자 회견에서 가장 에너지를 집중시켰던 사람은 앳된 얼굴의 수석 부사장 스캇 포스텔 이었다. 그는 새로운 아이폰 운영 체제인 iOS 5의 기능을 다시 한 번 리뷰했다. 이벤트의 마지막 순서에 다시 무대에선 스캇은 꿈의 디지털 어시스턴트 Siri를 소개했다. 그는 아이폰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나는 겸손한 개인 비서 입니다”. 하마터면 우울한 분위기였을 아침에 청중들은 큰 웃음을 터트렸다. 스캇은 다음 질문으로 문법에 맞지않는 잡스스러운 감탄사를 덧붙였습니다. “진짜 뻑가는군요”.잡스가 56로 세상을 떠난 이후 스캇 포스텔은 이제 애플의 리더십 팀의 더 중요하고 눈에 띄는 멤버가 되었다. 애플의 모바일 소프트웨어 사업부의 책임자로서, 그는 애플의 매출의 70 %를 차지하는 아이폰과 iPad와 IOS 운영 체제를 총괄하고 있다. 42세의 나이로 그는 현재 애플에서 최연소 수석 경영진의 한사람이다. 그는 또한 고 스티브 잡스의 비젼을 이해하고 실현시킨 수 있는 가장 촉망있는 대리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는 회사에서 가장 스티브와 가까운 사람이라고 봅니다.” 이번 여름에 애플을 떠난 iAd를 총괄하던 앤디 밀러는 말한다. “그가 말할 때, 사람들은 듣습니다.”
스캇 포스텔은 대학 졸업 후 바로 애플에 입사하여 현재 애플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번 주에 배포된 최신의 iOS 5는 현재까지 5년도 되지 않아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아이콘이 스크린에 배열되는 양식에서부터 손가락으로 밀어 기기를 끄는 방법까지 아이폰에 관련한 50여종이 넘는 특허에 그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2009년 터치스크린에 관한 가장 중요한 특허에는 ‘스티브 잡스’ 다음의 이름에 ‘스캇 포스텔’이 등재되어 있다.여러가지 면에서 스캇은 미니스티브 라고 불린다. 여러가지 디테일에 고집하는 면과 잡스처럼 기술과 테크닉에 국한된 언어를 평범하게 풀어내는 방식들, 그리고 스티브와 같은 기종의 Mercedes-Benz SL55 AMG를 몰고 심지어 무대에서 의상코드도 비슷하다. 검은신발, 청바지, 블랙 지퍼스웨터. 평상시에는 Reyn spooner 하와이안 셔츠를 즐긴다고 한다.스캇은 다른 중요한 방식으로 잡스와 매우 닯아있다. 동료의 표현을 빌려 약간 폄하하자면 치우친 구석에서 잡스 같다는 평을 듣는다. 스캇의 부서 직원들은 회사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이며 스캇은 그들의 존경과 리더쉽을 얻어냈다. 그와 동시에 몇몇 직원들은 회사를 떠났다. 몇명의 이사진들이 스캇과 충돌하는게 어려워 회사를 떠났으며, 직원들도 마찬가지 였다. iOS팀의 엔지니어들은 스캇이 ‘스티브가 맘에들어하지 않을거야’ 라고 말하는 소리에 지쳐 회사를 떠났다.스캇과 관련있던 몇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스캇은 협업에 의한 성과에 대해 신뢰를 쌓고 실수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며 미친듯 정치적이라고 한다. 그들은 스캇이 다른 이사회 멤버들과도 걱정스런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조나단 아이브와 맥 하드웨어 책임자 밥 맨스필드는 팀 쿡이 중재하지 않는 한 스캇과 미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회사내 정치적 성향은 미국사회에서볼때 특별한 일도 아니고 나쁜것도 아니다. 정치적이라 하기엔 스캇은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며 오히려 잡스가 떠난 지금에서는 회사에 필요한 인물이라고 볼수도 있다. 2010년 애플을 떠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총책임자 마이크 리는 ‘저는 스캇을 여러면에서 애플의 최고 책임자’로 추천한 적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은 비판이 아니라 칭찬이며 잡스와 비슷하다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논란들이야 어쨋든 오늘날 애플이 이정도의 성공을 이루기 까지 공동의 목표를 향해 질주를 하게만든 경영진들의 노력이 있었던게 사실이고, 회사는 리더를 위시한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잡스이후 시대의 애플의 성공이 예전같기위해 회사는 현재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최고결정권자 없는 상태에서 근본적으로 일하는 방식이 바뀌어야만 한다. 매주 월요일 이사회 회의에서 항상 충돌한 많은 미결된 문제들은 잡스의 결정에의해 해결됬었다. 이사회 멤버들은 회사를 이끌어 줄 새로운 최고 책임자를 찾아야 하는 가운데, 팀쿡은 이런 최고 부유층이면서 잡스에 충성했던 이사진들을 데리고 애플이 기존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가족의 경우라면 사랑하는 부모를 잃게되면 자식들이 서로 힘을 모아 가족의 역사와 사명을 새기며 단합하는 경우가 있고, 재산을 둘러싸고 각자 갈라서는 경우가 있다. 예일대 경영대 학장인 제프리 소넨필드는 ‘애플의 이사진은 새로운 역할을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잡스가 했던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명령하기 시작하면 과잉행동으로 볼 수 있지만, 만일 그자체를 애플의 유산으로 받아드릴 수 있다면 애플의 정신은 융합할 수 있을것이다.’포스텔의 최근의 성공은 달콤하다고만 말할 수 없다. 포스텔의 iSO를 탑재한 제품들이 애플을 세계최고의 회사로 만들고 있었지만, 포스텔의 멘토이자 정신적 리더가 곁에서 점차 병약해지고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씁쓸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어찌됐든, 애플은 2007년 아이폰의 런칭 이후 포스텔의 iOS를 탑재한 기기를 2억5천만대를 팔았고 아이폰으로만 700억달러 이상을 판매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삼성, HTC, 휴렛패커드(HPQ), Research in Motion(RIMM)등의 회사에서 터치폰들을 줄줄이 내놓았고 이번 10월 14일에 드디어 A5프로세서와 향상된 디지털 카메라를 갖추고 거의 모든나라의 네트웍에서도 작동이 가능한 새로운 4S를 내놓았고, 첫날에만 백만대 이상을 판매했다.아이폰4S 변화의 핵심은 포스텔의 iSO 5 운영체제이다. 음성인식 개인비서인 Siri는 운전중에도 검색, 메모를 가능하게 하며 여성의 목소리로 답변을 들려준다. ‘애플은 관점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서비스로 전환했다.’ Piper Jaffray(PJC)의 수석 연구원 진 문스터는 이러한 변화로 인해 애플이 2012년 iOS장비만 1억 8천3백만 달러의 판매를 예측하고있다.
애플의 작은 실험실에 불과했던 iOS그룹을 수백면의 직원들이 일하는 부서로 만든 공로에 더불어 스캇은 인수합병에 서툰 애플을 종용하여 팀을 확장하도록 만든다. 작년 모바일 광고회사인 ‘콰트로 와이어리스’사의 인수와 Siri의 인수는 역시 그의 공로였다. AT&T의 CTO인 존 도노반은 스캇을 평가하기를 ‘그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를 알고있다. 그리고 그것을 얻어낸다.’ ‘얻어내는데 있어 그는 주저함이 없다’라고 말한다.결단력은 많은 경우 장점으로 작용한다. 스캇은 그 직원들을 잘 다룰 줄 안다. iOS팀은 보통 애플의 금요일 저녁 맥주파티를 코팅세션으로 대체한다. iOS팀의 자부심이란 그들을 애플직원들 내에서, ‘우리’와 ‘우리 이외의 애플직원’들로 구분하는 수준인데, 잡스가 1980년대 맥 개발팀을 이끌 당시, 다른 건물을 사용하면서 해적깃발을 휘날리며 일했던 때를 연상 시킨다. 맥킨토시 소프트웨어에 대해 수년간 책을 써온 작가 윌 쉬플리는 ‘iOS팀과 아이폰 개발팀은 그들이 스스로 좀짱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iOS가 맥보다 많이 팔린다고 나를 놀리곤 했다’고 말한다. 여기에 포스털의 다른 면이 있다. 스캇은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데 잡스와 자신의 친분을 이용했다. 아이팟 개발팀장인 토니 파델은 스캇과의 잦은 마찰로 결국 애플을 떠났고 신분을 밝히지 않는 두 명의 직원들은 스캇과 일하기 싫어 회사를 그만두었다. 2005년까지 앱 개발팀 CTO였던 장 마리 휴롯은 자신은 새로운 일을 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 떠났다고 함축했다. 그는 현재 파리에 위치한 Fotopedia의 CEO를 맡고 있다. 포스텔에 대해 가까이 일했던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명확하다. 많은 사람들이 포스텔에 대해 지칠 줄 모르게 일하고, 스트레스에 견디고 업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설득력있는 식견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하는 한편, 다른 사람들은 그의 이름 말하는 것 만으로도 욱하는 반응을 보인다. 아이팟 부서 책임자로 일하다 2006년 팜으로 이직한 존 루빈스타인은 지난달 실리콘밸리 파티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포스텔의 이름이 나오자 버럭 자리를 박차고 돌아나왔다.
스캇은 Wash의 Kitsap 카운티에서 중산층이었고 3남 중 차남으로 자랐다. 그의 형인 브루스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20년간 수석 소프트웨어 디자인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의 친구들은 스캇의 집이 동네에서 PC를 최초로 산 집이라고 기억한다. 스캇의 중학생 시절에는 과학과 수학클래스에서 소질을 보였는데 주기적으로 교실에서 애플 II를 만지며 시간을 보냈다. 스캇의 오랜 친구인 헤더 브로킹스톤 과 중학교 때부터 애인이며 현재는 그의 아내인 몰리는 스캇에대해 ‘그는 어떻게 프로그래밍 하는지 알았다.’ ‘스캇에겐 쉬운일이었지만, 나머지 우리에겐 어려운 일 이었다.’라고 말한다. 스캇은 1년 일찍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거의 다방면에서 경쟁을 즐겼다. 체스클럽, ‘지식의 그릇’ 이라고 불리는 자연사 퀴즈등에 참여했다. 스캇은 그룹프로젝트에 만족하지 않고 어려운 문제에 스스로 도전하기를 즐겼다. 스캇은 4.0만점의 평점으로 공동수석으로 졸업했다. 다른 공동수석 졸업자는 그의 미래 부인인 몰리였다. ‘그의 목표는 하이테크 전자공학 설계자가 되는것이었다. 스캇의 관심을 끄는 것은 창조적인 뭔가를 만드는 일이다.’ 지방뉴스에 실린 그에대한 기사의 일부였다. 스캇은 논쟁을 즐기는 싸움개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무대에 서는것을 즐겼다. 고등학교 졸업전에는 뮤지컬 ‘스위니토드’ 작품 공연을 위해 연습을 했었는데 리허설동안 그는 감기에 걸린 채 쉬지않고 연습을 했다. 결국 그는 연습도중 의식을 잃고 무대에서 떨어져 감기로 요양해야 했다.포스텔은 스탠포드대학을 철학, 언어학, 컴퓨터 과학을 통합한 학부에서 ‘기호화 시스템’에 대한 논문으로 학사를 받아 졸업 햇고, 컴퓨터 과학으로 석사를 받았다. 92년 스탠포드를 졸업하고 잡스의 NeXT사에 입사하여 운영체제의 개발을 담당한다. 96년 애플이 NeXT사를 인수하고 잡스가 임시직 CEO로 다시 애플에 복귀하면서 포스텔은 매킨토시라인의 유저인터페이스 개발부에 합류한다.2000년 포스텔은 맥의 새로운 유저인터페이스인 ‘dubbed Aqua’의 리더가 된다. 아쿠아 인터페이스는 물에서 영감을 얻은 투명한 아이콘과 반사효과의 비쥬얼이 특징으로 잡스가 이 컨셉을 발표하면서 ‘우리의 디자인 철학은 한 번 보면 핥고 싶은’ 목표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몇 년 후 포스텔은 맥의 레오퍼드 버전에 관련된 그룹을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애플의 전 CFO인 프레드 앤더슨은 그가 진정 재능있는 떠오르는 별이라고 표현했다.
포스텔이 떠오르는 동안, 특히 2005년도 아이폰의 탄생과 관련한 길고 어려운 기간 동안, 적을 많이 만들었다. 잡스는 그 당시 아이폰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련하여 아이팟의 리눅스 기반 팀에게 맡길것인지, 혹은 매킨토시를 만들어낸 팀에게 줄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쉽게말해 맥을 축소시킬지 아이팟을 크게 키울것인지 판단해야 했다. 잡스는 물론 전자를 선호했는데 당시 존재햇던 많은 모바일 장비들에 대한 최적화된 운영체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잡스는 직접 결론을 내리지 않고 양 팀에게 서로 경쟁을 하도록 만들었다.당시 포스텔이 15명의 매킨토시 팀을 이끌고 있었고 OS X를 축소시켜 더욱 낮은전력과 배터리에서 동작하는 모델을 만들기 위한 작업들을 하고 있었다. 아이팟쪽 그룹은 파델이 이끌고 있었는데 파델은 2005년, 36에 가장 젊은 나이에 애플을 부사장을 역임한 촉망받는 인재였다. 포스텔과 파델의 경쟁은 재능, 자원, 사람들의 관심 그리고 주변의 신용 모든 것을 건 싸움이었다. 파델은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한 언급을 거부했다. 훨씬 후에 파델이 당시 상황과 자신의 입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나는 죤 루버스테인과 스티브 사코만이 애플을 떠날할때 그들로부터 경쟁력있는 아이폰 OS 프로젝트를 인계 받았습니다. 나는 맥OS를 수정하는 것이 아이폰의 OS 기반으로 적합하다는 것을 평가한 후에 재빨리 프로젝트를 종료했습니다. 최고의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명확했고, 프로젝트들간의 불필요한 주도권 싸움을 피하면서, 지난 몇십년간의 기술과 도구 자원의 효과적인 이용이 필요했습니다. 포스텔은 맥오에스의 축소판을 만들었는데 시작부터 보안을 철저히 지켜 다른 팀에 전혀 그 모습이 알려지지 않았다. 2007년 아이폰에 iOS가 탑재되고 나서 애플에서 포스텔의 입지가 확고해졌다. 애플의 다른 소프트웨어들처럼 하드웨어와 거의 완벽하게 매칭되어 작동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포스텔 팀의 엔지니어들의 기술이 없이는 불가능 했다. 예를 들어 파델이 카메라를 업그레이드 한다거나 블루투스 베이스의 디스플레이를 구현하고 싶어도 포스텔이 싫어하면 실현할 수 없었다. 포스텔은 아이튠즈와 같은 아이폰전용 버전의 프로그램 역시 자신의 팀에서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8년 파델은 애플을 떠났고, 내부 정치를 아는 사람들에 의하면 포스텔과 파델의 경쟁은 어찌됐든 그에 한 몫을 차지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창업 최초 10년간 사람들에게 꽤나 영향력을 미쳤다. 그 후 애플을 떠나 그럭저럭 넥스트를 운영하면서는 전략가이자 마케터, 그리고 매니져로서의 기술을 연마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포스텔은 잡스의 초기시절을 닮았다. 근사한 능력을 과시하면서도 끊임없이 뒤에 뭔가 든든한것을 준비하는 면에서 말이다. 2008년도 포스텔이 수석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애플내에서 그의 명성이 확고해졌고 업적에 대한 칭찬이 실수에 대한 비난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비평가들은 아직까지도 그의 문제해결 능력에 대해서는 인정을 한다. 아이폰이 출시되기 전까지 포스텔은 브라우저와 아이팟과 전화를 통합한 아이폰이기에 다른 회사들에의한 앱들은 필요없고 앱스토어도 구상하지 않았다. 단지 비디오를 시청하기 위해 구글 같은 기업의 팀과 파트너를 만들어 유튜브나 비디오를 볼 수 잇는 킬러앱을 탑재하면 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변화의 추세는 빨랐고 소비자들은 새로운 기기의 출시에 맞춰 아이폰을 해킹하여 비공인된 앱들을 설치하고 개발자들은 앱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포스텔은 시장변화에 대응하여 개발자에게 개발키트를 만들어 배포하고 아이튠즈에 앱스토어를 설치하는 전체를 총괄하게 된다. 이러한 융통성에 대해 현재 그의 라이벌이기도 한 구글의 수석 부사장 빅 군도트라(Vic Gundotra)마저 포스텔에 대해 ‘운영체제 팀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내가 본 사람 중 최고’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아이폰의 성공 때문에 포스텔은 더욱 애플에서 주목받고 있었는데, 잡스의 병세로 인한 공백기였기 때문에 그의 비중이 더 두드러졌다 . 2009년 6월,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WWDC)에서 포스텔은 상당한 부분의 키노트 발표를 맡게 되었다. 포스텔은 이때 흰색 가운을 입고 나와서 아이들의 과학수업을 더 재미있게 해주는 앱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아이폰으로 풍선을 부풀리는 장면에서 풍선이 부풀지 않자 직접 불어서 상황을 모면했지만 관중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잡스가 돌아오고 두고두고 포스텔에게 ‘그 과학실험’에 대해 씹혔다고 한다.
2010년 포스텔이 한번 더 사고를 치게된다. 아이폰4가 출시되기 전 잡스는 비밀유지를 이유로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할 직원들의 숫자를 제한시켰다. 포스텔은 잡스를 설득해 네트웍 성능과 통화실패등의 성능테스트를 명분으로 자기 직원들에게 십여대의 기기를 더 나누어주었다. 물론 외형은 3GS처럼 위장된 프로토타입이긴 했지만 결국 직원의 실수로 캘리포니아 레드우드의 한 독일 맥주집에 두고온 기기는 기즈모도 잡지사의 손에 들어가기에 이른다.아이폰 4가 판매되면서 특정부분을 손으로 잡으면 수신율이 떨어지는 ‘안테나게이트’가 큰 이슈가 되었고 7월경 애플은 공식기자회견을 통해 안테나게이트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다. 한 기자가 포스텔에 대해 안테나게이트가 소프트웨어의 오류로 인한 것이아니냐고 지적했을 때 포스텔은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의 내부 정보에 의하면 소프트웨어로 인한 문제가 실제 있다고 알려졌다.어찌됐든 포스텔은 아직까지는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력은 순항하고 있다. 애플은 그에게 테스트와 품질보증의 권한까지 부가적으로 준 상태이고, 그의 팀이 만드는 소프트웨어가 앞으로도 한동안 애플을 먹여 살릴 기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지난 10여년간 4천250만 달러 수준의 주식 23만7천 주를 사들였기 때문에 그가 애플을 떠나면 상당한 애플주가의 하락을 가져올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애플이 포스텔을 감싸는 또 다른 이유는 포스텔은 그야말로 iOS 개발자들에게 교주처럼 신봉되고 있으며 기회와 돈벌이를 꿈꾸는 수많은 프로그래머와 앱 개발자들이 구루로 받들고 있기 때문이다. 앱스토어 이후 애플이 개발자들에게 지불한 돈은 3십억 달러 이상이며 개발자들은 구글에게 러브콜을 받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넘나들 수 잇는 것이 포스텔의 덕이라고 생각한다.
포스텔이 애플 앱 개발 툴을 통제하면서부터, 개발자들은 그의 한마디 한마디 말에 좌지우지되었다. 올해 여름 벤처캐피탈 회사인 클레이너 퍼킨스 앤 바이어스에 의해 열린 회의에서, 포스텔은 애플 장비들의 위한 앱 개발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몇몇 주요 개발자들에게서 질문 공세를 받았다.포스텔은 자신들이 개발한 앱들이 애플스토어에 승인을 신속하게 받을 수 있는 별도의 창구를 요구하는 개발자 들에게 그러한 방법은 다른 개발자들의 형평성에 어긋나며, 한번 인증된 개발자들은 절차를 무시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포스텔은 아이폰을 신용카드처럼 사용할 수 있는 NFC라는 기술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은 후 개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다시 질문 했다.“개발자들이 NFC를 어떻게 사용할까요? 소비자들은 그 기술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포스텔의 이러한 대응은 그 회의에서 강한 인상을주었다. 쇼핑 애플리케이션인 샵킥(shopkick)의 최고경영자이며 창립자인 싸이렉 로딩는 포스텔애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당신이 하나의 질문을 하면 그는 그것이 다른 개발자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인지를 상세하게 파악하기 위해 다시 질문을 합니다”. 청중들에게 인상을 준 또 다른 일화가 있다. 포스텔은 펜이나 종이 혹은 노트북 없이 상세한 메모를 적었다. “그는 당신의 말을 들으면서 그의 아이폰을 만지기 시작합니다.”라고 클레이너 퍼킨스의 파트너이자 iOS개발자들에게 투자한 회사의 펀드 관리자인 매트 머피가 이야기했습니다.”당신은 그가 당신의 말을 듣지 않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이폰을 이용해 메모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개발자들은 불만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 불만 중 하나는 애플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간 어떤 종류의 협업에 대한 결정들이 최고경영자의 방에 들어간 후 해결될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사 결정 지연들은 비밀주의에 사로잡힌 스티브잡스의 재임기간 동안 대부분 외부로부터 숨겨진 애플의 서로 다른 부서들간의 긴장을 대변해주고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다르면 잡스와 포스텔은 아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동료들은 포스텔이 잡스에게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최신 기능을 보여주기 위해 잡스를 자주 방문했고, 수정해야 할 목록을 가지고 그의 사무실로 되돌아오곤 했다고 이야기했다. 어릴때부터 오랜 시간 포스텔의 친구였던 브룩킹톤은 작년 포스텔의 가족을 일요일에 방문했을때 포스텔은 그의 해먹에 누워 잡스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잡스가 하드웨어를 살펴보기 위해 조나단 아이브의 하드웨어 디자인실에 오래 머물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잡스가 좋아했던 또 다른 장소가 하드웨어 디자인실 한 층 위에 있는 포스텔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연구실이었다. 잡스가 이 젊은 간부를 자랑스러워한 것은 분명하다. “만약 하드웨어가 우리 제품의 두뇌이고 뼈를 잇는 힘줄이라면, 소프트웨어는 우리의 영혼입니다.”라고 잡스는 6월에 열린 애플의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잡스는 포스텔의 성과의 많은 부분을 언급했었다. 그날 아침 늦게 잡스는 포스텔이 최신 iOS버전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후 무대로 오면서, 포스텔에게 “아주 잘했어”라고 이야기를 한 후 마지막 발표시간으로 그가 애플의 추종자들 앞에 나섰다. “지금까지모든 것이 좋으셨나요?”라고 청중들에게 물어보았고, “자..저는 그걸 날려버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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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델의 진술”나는 죤 루버스테인과 스티브 사코만이 애플을 퇴사할때 그들로부터 경쟁력있는 아이폰 OS 프로젝트를 인계 받았습니다. 나는 맥OS를 수정하는 것이 아이폰의 OS 기반으로 적합하다는 것을 평가한 후에 재빨리 프로젝트를 종료했습니다. 최고의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명확했고, 프로젝트들간의 불필요한 주도권 싸움을 피하면서, 지난 몇십년간의 기술과 도구 자원의 효과적인 이용이 필요했습니다. “
1. 스티브잡스 – 열정, 고집, 실행으로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해주신…
3. 스티브잡스의 작업 환경 – 사무실, 홈오피스 사진
4. 스티브잡스 – 8번이나 TIME/타임지 커버를 장식한 남자
6. 스티브잡스의 십계명
포스텔에 대해 잘알수 있는 포스트 잘 봤습니다.
이 글도 저희 맥매니아 회원분들이 자발적으로 번역해주신 글이에요. 저도 배웠어요..
잘 읽었습니다.
숟가락을 하나 얹자면, 네 번째 문단에서 마이크 리가 ‘저는 스캇을 여러면에서 애플의 최고 책임자’로 추천한 적 있다는 부분의 원문은 “I once referred to Scott as Apple’s chief a–hole,”인데, 여기서 a-hole은 asshole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애플의 ‘최고 개새끼’라고 불렀다는 말이죠. 그래서 굳이 이건 욕이 아니라 칭찬이라는 말도 덧붙인 것이고요.
아..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혹시 관심있으시면 저희 맥매니아 필진/번역으로 참여안하시겠어요?
의견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읽기가 조금 힘드네요.
네.. 그래도 이렇게 맥매니아 참여자분들이 같이 해서 한글로 해놓으니, 영문으로 읽는 것보다 훨씬 편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