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규장각과 경연을 통한 溫故知新 주체적 지식경영

박현모 교수님께서 진행하시는 정조이야기 제4강 수업 공유합니다.

이번 10월14일에 열린 대통령의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문 중 <미국의 위대한 지도자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은 “한 사회의 궁극적인 권력의 원천은 바로 국민 자신”이라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미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이러한 가치는 한국의 가치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성군으로 존경받는 세종대왕은 약 600년 전 “백성이 하늘이고, 민심이 곧 천심이다. 하늘처럼 백성을 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목이  세종리더십연구소의 학술대회 내용을 인용한거라 하시며, 세종의 국가 경영 철학과 방식이 널리 퍼지는 것이 느껴지신다고 하셨습니다.

 

 

규장각을 통한 지식 경영

정조의 리더십/경영기법을 이야기할 때 세종대왕과 많이 비교를하면서,  세종은 소를 뒤에서 유도하는 스타일이라면, 정조는 소를 앞에서 끄는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정조의 리더십을 부리는 주요 정책의 하나가 싱크탱크인 규장각을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규장각이 있는 건물의 이름을 주합루라고 하는데 이는 하늘과 땅을 잠는 자루라는 뜻이라고 하며,  출입무인 “어수문”은  백성은 임을을 띄울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 입니다.

주합루 어수문

사진출처 : http://hanulh.egloos.com/4348079

 

정조는 개혁의 조건으로 개혁의 명분과 청사진을 그리는 비전을 내세우고, 이를 위한 지지세력 규합이 필요습니다.  이를 구체화는 전략으로 ▲  문명의 정치  ▲ 국왕의 정치기반 구축 ▲ 신하와 벗 ▲ 탕평을 내세워 규장각을 설립했습니다.  이렇게 설립된 규장각은 (1) 도서의 수집과 편찬 ,  (2) 국왕의 고전 강독 및 국정 자문 , (3) 제도개혁 추진 , (4) 초계문신/ 과거에 급제한 인물을 재교육 시키는  등 역할을 넓혀나갔습니다. “우문지치(右文之治)”와 “작인지화(作人之化)”를 규장각의 2대 명분으로 내세우고 문화 정치를 표방하였습니다. ‘우문지치’가 사대부를 가까이하는 정치라면, ‘작인지화’는 인재를 변화시키고 고무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초계문신은 정조 5년(1781)에 16명을 선발한 것을 시작으로 24년까지 11회에 걸쳐 모두 142명이 선발되어 나라의 Think Tank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 당시 사람들에 의해 대단한 선망이 되었습니다. 다산 정약용도 제6회 출신으로 이때부터 정조와 연을 맺어 갑니다.

규장각이 잘 흘러간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앞에서 끄는 방식을 선호했던 정조는 軍師로써 임금이자 스승으로써 신하들을 대했으며,  이택징의 사신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정도는 세종대왕의 집현적 학사들 예를 들어 친신/근신이 필요함을 역설하였고,  조속목의 우물안 개구리 같이 옛것/국내일만 살핀다는 간언과, 정약용의 초계문신제를 비판 항의식 건의도 받아야 했습니다.

 

 

경연을 통해 날개를 이루다.

조선시대의 왕은 ‘경연’이라는 제도에 의해 공부를 해야만 했습니다. 아침, 오후, 저녁에 삼시간으로 법강을 이뤘으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특강/보강, 밤에 열리는 소대/야대도 있었습니다.

정조 때에는 말을 통해서 의심을 일으키게하고, 그 의심으로 말미암아 그 의심을 풀게하여, 마침내 사람의 착한 본심을 느끼고/돌아가게끔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이는 전달형으로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져 스스로 깨닿게 하며 교화하는 방식을 취했다 합니다.

이때 정조의 중요 철학을 하나 설명해 주십니다.

溫故知新 온고지신 옛 것 속에서 새로운 것을 깨닫는다.

유행한 것을 일삼는 것이 아닌, 우리의 안목을 높혀서 어떠한 신규 사상이 들어오더라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응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주체정신이 중요하다고도 말씀해주십니다.

 

 

어록

대개 학문에는 체(體)와 용(用)이 있고, 우주의 일은 모두 내 직분안의 일이며, 전곡(錢穀)과 군대는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풍토는 자기만 알고 나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심지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 같은 것은 쓸데없는 일로 여기고 있기까지 하니, 이래서야 나라가 무엇을 믿겠는가.”  – 정조 20/10/22

 

 

느낌

정조는 왕이 된 후에 새로운 개혁을 펼치기 위대 꾸준히  규장각과 경연을 통해 文문을 익히고, 溫故知新 온고지신 할 수 있었습니다. 규장각 반대 상소에도 세종의 예와, 역사속에서의 사례를 논리정연하게 펼처 꾸준히 자신의 정치 위상을 갖추기 위해 펼치는 전술에서 여러가지를 배우는 것 같습니다.  또한  국가를 경영함에 있어 Think Tank가 중요하고 이를 위한 인재 등용과 매일 3번의 경연으로 근본과 역사를 통한 사례연구 토론 발표를 통해 서로 교화가 되어감과 동시에, 국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간 원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Peter Kim에 대하여

김태영 PMP 010-9344-7505 프로젝트리서치(주) 대표/설립 peterkim@projectresearch.co.kr http://www.ProjectResear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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