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리더십연구소 주관 제3회 세종학국제학술회(대주제:세종대왕 리더십의 국제적 비교와 한글의 미래가치)를 참관하고 기록을 남깁니다.
한글의 탄생 智의 혁명 – 노마 히데끼 , 일본 국제교양대학 교수
제1회의 세종리더십 비교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순우 교수님 주관)
- 당태종과 세종대왕 – 고려대 김택민 교수
- 정조의 탕평 정치와 세종 – 단국대 김문식 교수
- 한국의 세계화와 세종의 재조명 : 토마스 재퍼슨을 중심으로 – 조지메이슨대 노영찬 교수
- 토론 – 서울대 박한제 교수,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뱅승종 대표, 경희대 이동수 교수
경복궁 내 경회루 답사 및 숙명가야금연주단 (신치화평)
제2회의 세종리더십의 핵심개념 – 숙명여대 송혜진 교수
- 세종대왕의 리더십행동상 특징에 관한 연구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윤재 교수
- 세종의 중용 리더십에 관한 일고찰 – 한국학중앙연구원 박병련 교수
- 세종의 실용사대의 외교리더십 – 서울시립대 이익주 교수
- 세종의 민본정치 – 세종리더십연구소 박현모 연구실장
- 토론 – 한국교원대 김주성 교수,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 연세대 국학연구원 이원택 교수, 국회입법조사처 이현출 팀장
한글의 탄생 智의 혁명 – 노마 히데끼 , 일본 국제교양대학 교수
일본인이시면서 “한글의 탄생” 책을 출간하신 노마 교수님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일본 및 해외에서 한글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음이 문자가 되는’ 훈민정음의 “지智”의 의미에 대해 강조하셨다. 중요한 것은 말이라는 것은 단순한 “지智”에서 벗어나 쓰는 것과 쓰여지는 것 즉 에크리튀르 ecriture 의 혁명이며, 이는 또 다른 새로운 미학을 만들어 내는 게슈탈트 Gestalt의 혁명이라고를 강조하셨다.
제1회의 세종리더십 비교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순우 교수님 주관)
당태종과 세종대왕 – 고려대 김택민 교수
당 태종은 창업과 수성 정치 가운데 태종은 왕조 창업에 성공했더라도 수성할 수 있는 뛰어난 군주가 출현해서 근검한 자세로 제도를 갖추어 체제를 안정시키지 않으면 왕조의 조명이 오래 이어질 수 없다는 논리를 강조하였다고 한다.
당 태종과 세종대왕은 군주 자신이 근검하는 정사를 펼침으로써 모범이 된 점, 포용력 있는 인재를 등용한 점, 현인을 등용하여 간언을 받아들이고 직무를 맡긴 점, 포용성을 보이면서도 과단성 있게 대외 정책을 전개한 점이 공통점이라고 언급하셨다. 즉 통치자와 현명한 관리들이 시대의 추세와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여 이를 현실에서 구현한 것이 치세를 이루는 비결이라고 한다.
1. 근원이 깨끗한 정치
당 태종은 정치 철학을 아래와 같이 어록으로 설명하였다.
“군주가 된 자의 도리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오. 백성을 해치면서 자신을 받들게 하는 것은 넓적다리를 베어 배를 채우는 것과 같으니 배는 부르나 몸은 죽소. 만약 천하를 편안케 하려면 반드시 먼저 자신을 바르게 해야 하오. 몸이 바른데 그름자가 굽거나 위가 가지런한데 아래가 어지러운 경우는 없소..
이는 ‘순자’의 군도편으로 군주의 덕목의 첫째는 믿음이다. 군주가 권모술수를 부리기를 좋아하면 신하와 관리, 거짓을 일삼는 사람까지 이를 틈타서 남을 속일 일이다. 둘째는 공정무사함이다. 군주가 편애하기를 좋아한다면 신하와 관리들이 이를 틈타서 편향된 짓을 할 것이다. 셋째는 공평함이다. 군주가 공평한 기준에 따라 이루어진 평가를 뒤엎기를 좋아하면 신하와 관리들은 이를 틈타서 원칙을 뒤엎는 모험을 할 것이다. 넷째는 탐욕을 버리는 것이다. 군주가 이익을 탐하면 신하와 관리들은 이를 틈타서 민을 갈취할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민의 근원이다. 근원이 맑으면 물줄기도 맑으며, 근원이 흐리면 물줄기도 흐리다. 君者、民之源也,源清则流清,源浊则流浊 라고 하였다.
짐은 늘 그 몸을 상하게 하는 요인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탐욕이 화를 이룬다고 생각하고 있소. 만약 맛있는 음식을 탐하고 가무와 미녀에 지나치게 빠진다면 잃는 바도 클 것이고, 정사를 방해하고 백성을 어지럽게 할 것이오. 또한 한 마디라도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 만백성은 그로인해 마음이 멀어지고 원한과 비방이 만들어지고 이반 또한 일어날 것이오 짐은 매번 이를 생각하여 감히 방탕할 수 없었소.
군주는 배이고, 민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엎을 수도 있다. (공자, 고기는 물을 잃으면 죽지만, 물은 고기를 잃어도 물일 뿐이다. )
세종 역시 총명하고 배우기를 좋아해, 취미가 공부라 할 정도로 부저런히 공부해서 섭력하지 않은 전적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항상 국가의 이익과 백성의 삶에 보탬이 되는 것인가를 염두에 두었으며, 스스로 농사를 지어보이기도 했다. 또한 술은 해독이 심한 것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의지를 손상시키고 위엄을 잃게하기 때문에 삼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보고 스스로 실천하셨다고 한다.
2. 폭넓게 인재를 등용하는 포용 정치
명군은 하나 같이 넓은 포용력을 보이는 공통점을 언급하였다. 당 태종의 경우 ‘위징’을 세종대왕의 경우 황희와 장영실을 예로 드셨다. 황희의 경우 서얼출신/뇌물수수혐의/간통혐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능력을 간파하고 등용하여 조선 최고의 재상이 게 한 점과, 재상으로 임용한 뒤에는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전적으로 조정을 이끌어가는 책임을 맡겼다고 한다. 노비 출신 장영실을 등용하여 과학적 재능을 발휘한 일. 양수척 신분의 천인의 집에서 자란 최윤적을 등용해서 압록강 유역의 영토를 개척한 일 등등 많은 사례가 있다고 했다. 세종이 명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이 넓은 포용성으로 많은 인재를 등용하고, 자신의 능력을 백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3. 현인을 등용해서 간언을 듣는 정치
당 태종은 사람들이 자기 모습을 비춰보려면 거울이 필요하듯이 군주가 자신의 과오를 알려면 반드시 충신에 의지해야 한다. 군주가 스스로 현명하다고 하면 어느 신하가 간언을 하겠는가 라든가.. 명군은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는데 반해 암군은 원하는 의견만 듣고 믿는다고 확신했다.
세종은 자유로운 회의 분위기를 조성하여 “말하면 들어주고 계책을 내면 시행되었으며, 알고 있는 일을 말하지 않는 것이 없는” 분위기가 깨질 것을 염려했다. 또한 세종은 아첨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꺼려했다. 아부를 듣는 순간 위험에 빠진다고 생각한 것 같다. 세종은 ‘대학연의’ 중에 우문사급이 “황제의 아름다운 정원에 감탄했다”하는 대목에 이으로 “예로부터 간사하고 아첨을 하는 신하가 김금에게 아양을 부리는 형상이 이와 같았다. 하지만 그 신명을 끝까지 보존한 자가 없었다”라고 말하여 충성경쟁을 일삼는 박은에게 일침을 가한 일도 있다.
4. 포용성과 과단성으로 대처하는 대외정책
당 태종 및 세종 모두 포용성 및 과단성 정책을 펼쳤는데, 세종의 경우 노력질하는 왜구에게는 교역할 수 있는 권한과 세사미를 주어 회유함으로 노략을을 막을 숭 씨었고, 여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공세를 펴서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영토를 개척했다.
정조의 탕평 정치와 세종 – 단국대 김문식 교수
1. 정조가 중시한 호, 만천명월주인옹 (萬川明月主人翁)
2. 인재는 가자의 능력에 따라 쓴다.
3. 정책의 시행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
4. 모든 정파를 포용하는 군주
5. 정조의 탕평 정치에서 수용할 점
6. 세종과 정조의 비교
세종과 정조의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점을 설명해주셨다. 우선 20대의 젊은 나이에 국왕이 된 점과 그때 이미 상당 수준의 학문 견지에 있었다고 한다. 국왕이 책을 보는 학자의 모습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다음으로 우수한 학자들을 모아 국가 정책을 연구하는 집현전/규장각 같은 싱크 탱크를 운영하면서, 이곳에서 연구한 결과를 다수의 서적으로 출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세종의 시기가 창업기였고, 경국대전/국조오례의/악학궤범 같은 예제와 법제가 만들어진 반명, 정주는 수성기의 국왕으로 17세기 외국과의 큰 전쟁 이후에 무너진 국가의 틀을 재건하는 과제와, 이 국가의 틀은 어떻게 수리하여 지속시켜갈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였다. 경국대전과 속대전을 합하여 대전통편을, 그리고 국조오례의와 속오례의를 합쳐 춘광통고를 만들었다.
세종에 비해 정조는 정치적 발언이 강하고 독단적인 모습이 강했다. 세종이 창업기인 15세기의 결실을 거둔 국왕이라면, 정조는 재건기인 18세기의 결실을 거둔 국광이면서 학자군자라는 점이 비슷하지만 시대적 상황과 이에 대처하는 방식의 차이를 설명해주셨다.
한국의 세계화와 세종의 재조명 : 토마스 재퍼슨을 중심으로 – 조지메이슨대 노영찬 교수
New Korea,
Korea beyond Korea
미국이 국가적 위기를 당한다거나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할 때가 온다거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정신적 고무 받기를 위해서 반드시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슬로건으로 미국의 건국이념이나 정신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새롭게 찾고 해석에서 국민들에게 앞으로 갈 길을 제시했다고 한다.
세종대왕이나 토마스 제퍼슨은 각각 그 나라의 기초를 세운 왕이자, 대통령이었다. 그들은 철저한 인본주의에 입각해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우해 누구든지 읽고 쓰는 문맹자가 없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국민들이 말과 글을 가지는 것은 특권층이 가지는 사치가 아닌 국민 누구나 가져야할 인간의 기본 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인간은 배움으로서 참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고 사회가 번영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세종이나 뫄스 재퍼슨은 인문학 분 아니라 과학기술에 까지 영역을 넓혀서 깊이 연구하고 학문을 장려함으로서 국가의 토대를 굳건하게 닦았다. 그 뿐 아니라 이러한 인문학이나 과학의 연구가 특정 사회계급에 만 머물 것이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 까지도 이러한 배움이 가능하도록 노력하였다.
이러한 인문주의, 과학주의,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누릴 수 있기 위해서 세종은 한글을 제창하고 농업기술을 일으켜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나아질 수 있게 했고, 토마스 제퍼슨은 초창기 미국이 앞으로 세계적인 미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놓아 준 대통령이다.
세종의 지도정신과 가치관, 그의 민본사상과 과학주의 그리고 한글창제에 따른 인간의 기본적 표현의 자유와 권리는 앞으로 한국이 세계화 하는데 커다른 정신적인 기틀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토론 – 서울대 박한제 교수,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뱅승종 대표, 경희대 이동수 교수
경복궁 내 경회루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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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의 세종리더십의 핵심개념 – 숙명여대 송혜진 교수
세종대왕의 리더십행동상 특징에 관한 연구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윤재 교수
1. 균형감각 (Sense of Balance)
2. 힘실어주기 (Empowerment)
3. 추진력 (Driving Force)
대학의 명명덕(明明德)과 지어지선(止於至善)를 바탕으로 한 “힘실어주기”의 리더십은 “친민 親民’의 구체적인 실천이었다.
세종대왕이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여러 정책들을 힘있게 “추진했다”는 점은 중도(中道)란 그저 생각과 말로 헤아려지는 것이 아닌, 자신의 분명한 주견을 가지고 몸을 움직이고 선을 드러내고 악을 누르며 일이 마땅하게 되게 하는 것, 즉 실천적으로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는 중도정치의 사례을 것이다.
또한 세종대왕의 정치리더십은 기존의자원동원능력,자질,정책집행능력으로 이해되던 “강력한 리더십”에서 새로운 개념으로 발전하여 보다 질적인 소프트파워 차원의 요소들이 충실하게 녹아있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하며 마무리를 해주셨다.
세종의 중용 리더십에 관한 일고찰 – 한국학중앙연구원 박병련 교수
1. 상황적 중용
2. 창조적 중용
3. 세종 ‘심법’중용 (지성至誠과 유연성, 유교와 불교, 불편不偏의 중용)과 ‘상황’내 정책 중용 (문과 무, 덕치와 형법, 지배층과 비지배층)
의 관점에서 세종을 분석해 주셨다.
세종의 실용사대의 외교리더십 – 서울시립대 이익주 교수
1. 고려 말, 조선 초 대 원/명 관계의 변화
2. 세종대의 사대외교
한중 간의 책봉-조공 관계에서 가장 사대적이며 가장 자주적인 시기가 바로 조선 세종대이다. 세종의 외교는 가장 사대적인 것이 가장 자주적이라는 역설을 담고 있으며, 그 성과는 국내에서 민족문화의 발달과 영토의 확장이라는 실리로써 구현되었다. 그러한 점에서 세종대의 사대외교를 ‘실용사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세종의 민본정치 – 세종리더십연구소 박현모 연구실장
1. ‘민본’ 세종 정치를 꿰뚫고 있는 핵심 개념
2. ‘민본’의 의미와 전거
3. ‘세종의 ‘민본정신’ 실천
실록에 총 29회나 ‘민본’에 관련된 말이 언급되는데
-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 (세종 1/2/12; 5/7/3; 5/7/13; 8/5/4)
- 근심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영구히 끊어져서 각기 생생生生하는 즐거움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국왕 본연의 임무다. (세종 5/7/3)
- 임금의 직책음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진실로 차별없이 만물을 다스려야 할 임금이 어찌 양민과 천인을 구별해서 다스리겠는가 (세종9/8/29)
- 백성들의 뜻이 잘 전달되는 것이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것
- 백성들의 수명을 길게 하는 일이 나라의 근본을 굳게 하는 일
세종의 돋보이는 실적으로는
-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
- 국가의 안전 (중국과의 긴밀한 사대 외교, 왜구/여진에 대한 강력한 토벌, 4군6진의 영토개척)
-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시간과 문자를 백성들에게 내어준 것
세종은 민본정신을 ‘말’에 멈추지 않고 ‘일’을 이루어낸 지도자였다. 세종의 비전은 “백성들이 자기 직업을 즐길 수 있는 민락생생民樂生生 (세종 32/2/17)” 나라를 만들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임금이었다. 세종32년을 크게 여섯 시기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준비(즉위-4년) : 경연개최, 집현전 인재양성, 대마도토벌, 고려사개정
위기(4-8년) : 강원도 대기근/4, 이각 완비난/5, 통전법폐지/7, 한양대화재/8
민생경영(8-12) : 세제개혁제안(공법논의/10), 선진농업기술보급(농사직설/11),과학영농(12)
문화개혁(13-16) : 아악사용(13),수고법개정(15)삼강행실도간행배포(16)
개척개혁(18-28) : 4군6진설치(16), 사민시작(17),의정부서사제(18),2차파저감토(18),훈민정음창제(25),공법확정(26)
시련(28-32) : 두아들,왕비사망 (27/28), 황해도대기근(29),국고바닥(29),내불당논쟁(30),명나라파병요청(31)
토론 – 한국교원대 김주성 교수,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 연세대 국학연구원 이원택 교수, 국회입법조사처 이현출 팀장
느낌/마무리
막연하게나마 느낀 세종대왕을 학술적으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 세종의 근본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세종 대왕의 업적을 이해하니 상호관의 연관성이 보이면서 더욱 인간적인 세종대왕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노력하는 학구파, ▲ 민본정신으로 중무장한 그의 철학과 이를 ▲ 民樂生生 비전을 심어 모든 중용적 판단하에 일에 전념하신 점, ▲ 부하의 허물을 덮어주고 항상 위임하며, 옆에서 참모/브레인으로 활용하신 점, ▲ 중국/일본/여진족과의 실용적 사대주의, 외교정책 등등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박현모 교수님께서 경복궁을 스토리텔링으로 엮어서 설명해주심에, 알고 보는것과 모르고 보는 것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게 부끄럽게 여겨졌네요. 이후 송혜진 교수님이 주관해주신 숙명가야금연주단의 운치있는 국악 연주도 멋졌습니다.
“훈민정음” 창제의 우수성은 물론, 그 안에 담겨진 세종대왕의 동기를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일깨워준 본 세미나에 감사를 느낍니다.
모든 세미나를 마치고 조촐한 저녁 식사를 나누며 기념 촬영을 하였습니다.
좌측부터 박현모 교수, 국정호 연구팀장, 노마 히데끼 교수, 김영옥 대표, 송혜진 교수, 김기섭 이사
추가. 2011.10.17
제가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 멘토링 사업인 상록수 회원 3분도 오셨는데.. 그분들의 후기도 기록 차원에서 남깁니다.
김미영님
한글의 날을 맞이하여 한국학 중앙연구원 세종리더십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제3회 세종학국제 학술회의 ‘세종대왕 리더십의 국제적 비교와 한글의 미래가치’ 에 대한 세미나를 하루종일 참석했었다…세미나 일정중에 점심 후 경복궁을 투어하는 1시간 일정이 있었는데..아!~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기쁨이 크다고!. 스토리가 있는 수정전과 경회루와 강녕전과 근정전과 교태전등..풍수지리의 중요성및 우리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더불어 주체성과 뿌리깊은 우리의 정체성도 알 수 있는 참으로 의미있는 시간…너무나 외모가 깔끔하고 정갈하게 생긴 박현모교수님의 안내로 이뤄진 아주아주 행복한 시간중에 하나!..^^
여러 교수님들의 말씀중에 민본정치의 박현모교수님의 강의와 실용사대의 외교 리더십의 이익주교수님의 강의와 한국의 세계화와 세종의 재조명이란 제목으로 토마스 제퍼슨과의 비교를 해주신 미 조지메이슨대 교수님이신 노영찬교수님의 강의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조선이 민주국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의 정치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했고 더불어 국민에 의한 정치와, 국민의 정치는 하지 못했지만 그 안에서도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왕권과 신권을 분리조화 시키면서 여러가지 우수한 제도들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내는 너무나 뛰어난 행정가이면서 과학자이시면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우리의 위대한 세종임금의 리더십에서 가슴깊이 나에게는 큰 뭔가를 심어준 너무나 의미있는 멋진 하루였음에.! 이자리를 함께 할 수 있게 해준 김태영대표님께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민언정님
경복궁오랫만에 돌아보며 박현모교수님의 유머에 웃으며 설명들으니 아이들도 이렇게 재밌게 국사를 한다면 얼마나좋을까 싶더군요! 경복궁을 설명을 들으며 다니니 ! 한 곳 곳 마다 스토리텔링이 또 큰 의미로 다가오더군요 ! 역사공부는 자신의 뿌리깊은 정체성을 찾는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
홍순규님
저 자신 우리 역사에 대한 미천한 지식이 부끄러웠습니다..좀더 공부해야 겠어요..그동안 좋은 책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읽어보는 일을 게을리 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좋은 의견을 주신 노영찬교수님, 노마 히데끼님, 백승종 대표님, 이 한우 기자님, 박현모 원장님..모두 감사했습니다. 저는 특히 노 영찬 교수님과 이 한우기자님의 의견에 감명을 많이 받았습니다..저도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우리의 글과 정신을 옳바르게 인식하고 바로 세우는 일에 어떤 방법으로 동참할 것인가를 숙고해야겠네요..
너무나 좋은 내용이라서 동영상 공유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