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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Leadership / 한국형리더십’ 카테고리의 보관물

문제아 충녕 이도, 성군을 향한 리더십 그칠 지 止 중용의 자세

3월 13, 2012 댓글 남기기

박현모 교수님의 “세종실록아카데미, 세종을 벤치마킹하라 2강 내용 입니다.

 

세종대왕이 돌아가신 후 만들어진 세종실록의 첫 페이지에는 세종에 대해 “영특하고 문명하면서도 과단성이 있으며 강의하고 신중하면서도 너그러우며 인자하고 공손하고 효성스러운 것이 타고난 천품이었다”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태종이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을 후계자로 선정할때의 3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충년대군이 천성이 총민하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 비록 몹시 춥고 더운 날씨라도 밤을 새워 글을 읽고,
  2. 또 정치에 대한 대체를 알아, 매양 국가에 큰 일이 생겼을 제는 의견을 내되, 모두 범상한 소견이 의외로 뛰어나며
  3. 또 그 아들 중에 장차 크게될 수 있는 자격을 지닌자가 있으니, 내 이제 충녕으로써 세자를 삼고라 하노라.

 

이처럼 총명하고, 범상한 소견을 내며, 또한 자녀 교육까지 신경을 쓴 세종의 어렸을적 모습은 어땠을까? 박현모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일명 “문제아”라고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알려주셨습니다. 양녕대군에 빗대어 잘난체하고, 고자질을 통해 외가집 민씨 가문을 위태롭게하고, 고기를 좋아하나 운동부족으로 과체중에 시달리는 충녕은 즉위 초반은 거의 무기력한 국왕으로 국정을 엉망으로 운영한다고 찍힌 임금이었다.

  • 모든 결정권은 상왕인 태종에게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 “상왕이 윤허하지 않았으니, 낸들 어찌하리오 1/6/18)
  • 왕비 가문이 풍비박산 나도 발언 한마디 못하고 밤늦게까지 태종을 따라 춤추고 (00/12/15)
  • 부왕께 ‘비대한 몸’이라 지적 받고 (00/10/9 , 1/2/20)
  • 백성들로부터 “사냥을 자주 다닌다”고 비난 받고 (1/12/25)
  • 역관에게 “이 따위 임금이 무슨 대체(大體)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고 욕까지 먹고 (3/2/18)
  • 신하들이 왕 앞에서 함부로 다투고 (1/4/9)

 

 

이러한 모습은 제가 보기에도 왕으로써의 행동치고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충녕은 책읽기를 좋아하였고, 아버지 태종과 형 양녕을 교사 삼아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갔고, 즉위 5년부터는 황희, 맹사성을 만나게 됨으로 비로서 힘을 낼 수 있는 궁정운영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칠지

 

무엇보다도 강의 내용 중에 기억나는 것은 세종 이도의 “그칠 지 “의 능력입니다.

“중국의 사신을 대하여 주인으로서 한 모금도 능히 마실 수 없다면 어찌 손님을 권하여서 그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겠느냐? 충녕은 비록 술을 잘 마시지 못하나, 적당히 마시고 그친다. 또 그 아들 가운데 장대(壯大)한 놈이 있다. 효령대군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니, 이것도 또한 불가(不可)하다. 충녕대군이 대위(大位, 매우 높은 관직)를 맡을 만하니, 나는 충녕으로서 세자를 정하겠다.” – 태종 18/06/03

 

“충녕/이도/세종은 술을 마시되 적당히 마시고 그친다.(適中而止)”라면서 그 때문에 세자로 정한다고 말합니다. 태종은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쳐서도 안 된다면서 ‘적중이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적중이지’는 어전회의에서 신하들에게 이야기하도록 한 다음 끼어들고 싶은 유혹을 참고 기다렸다가 신하들이 충분히 얘기하면 그 가운데 가장 좋은 의견이다 싶은 말에 힘을 실어줍니다. 세종은 이렇게 술만이 아닌 매사에 적중이지를 실천하는 임금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칠 지 “의 능력은 정조 이산에서도 보이는데 활쏘기 5순/50발을 하면서 49발 명중시키고, 나머지 1발은 아껴두는 止 의 정신과 활쏘기를 위해 온 마음을 기울이는 마음으로, 대충하지 않게 하려는 마음과 이를 위한 팔의 힘을 아끼기 위해 밥, 글쓰는 것을 멈치는  止 의 이야기 입니다.  ( 참고 : 정조 – 멈출(止) 수 있는 힘 / 중용의 철학 )

 

이러한 “그칠 지 止” 올바로 제어하는 중용의 자세가 세종을 위대하게 모습이 아닌가 싶고, 리더로써 필요한건 독서광, 소신있는 제안, 후배양성과 중용적인 그칠 지 止  덕목의 중요성을 배운것 같습니다.


 

1) 세종실록아카데미 6기 안내

2) 세종실록아카데미 6기 – 1강 : 육조의 공간감각을 살린 세종이야기

3) 세종실록아카데미 6기 – 2강 : 문제아 충녕 이도, 성군을 향한 리더십 그칠 지 止 중용의 자세

 

세종실록아카데미 육조의 공간감각을 살린 세종이야기 1회 후기

3월 7, 2012 2개의 댓글

한국형리더십개발원 세종실록아카데미 제6기 강좌가 “세종대왕을 벤치마킹하라”라는 소주제를 가지고 개강되었습니다. 총15회에 걸친 프로그램중 제1회가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번 공개 강좌는 많은 면에서 의미가 큰 행사입니다.

 

  1. 세종문화회관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한국형리더십개발원 자체 교육 프로그램 진행
  2. 도쿄포럼의 노하우를 토대로 경국대전의 육조체계를 바탕으로 교재 전면 재구성
  3. 발표자료/발표스킬의 iPad / iPhone을 통한 현대적 Visualize 재구성
  4. 세종원우회의 적극적인 지원

 

손욱 회장님경기창조학교 이청승 청장님께서 개강 축하 기조연설을 하여 주셨고,  박현모 교수님께서 세종실록의 개요와 경국체계 구조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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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세종문화회관에서 했던 실록아카데미를 이번에는 연구실 자체적으로 독립해서 하는 첫 공개 세미나였습니다. 광화문 8번출구에 있는 베세토갤러리를 대관하여 진행하였습니다.

423503_3121972442606_1063432199_32508192_219446170_n번의 세종실록아카데미 교재는 기존의 세종처럼의 이야기형태에서 조선/정도전의 경국대전/경국체계에 의해 완전히 새롭게 개편하였습니다. 기존이 인문학적 이야기가 주였다면, 이번 교재 구성은 이호예병형공의 육조 체계의 틀을 따라 이야기들을 재구성하여, 시스템적인 조선과 이도/세종의 스토리텔링과 세종실록의 중요한 원문을 그대로 옮겨 놓아 교재 안에서, 원석과 다이아몬드를 둘 다 체화할 수 있게 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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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세토갤러리에서 박현모 교수님께서 강의하시는 모습이십니다. iPad 키노트를 이용하셨고, iPhone으로 원격으로 제어하여 Presentation을 하고 계십니다.  SERI CEO 스타강사 답게 재밌고 명료하게, 그리고 세종 당대의 이야기와 현안을 비교해가면서 이야기를 통한 생각거리를 풀어놓는 방향으로 강의를 진행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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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이번 세종이야기는 공간감각을 살려서 입체적으로 교재가 재구성되었습니다. 왕의 집무실인 사정전을 기준으로 뿌리깊은 나무에서 자주 경연을 벌렸던 경회루, 학자들이 연구에 몰두했던 집현전은 물론 대외 행사 사 업무를 수행하던 근정전, 왕실의 출고업무를 맡은 승정원이야기와 의정부 산하의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 및 감찰에 이르는 사헌부, 중추부와 좌묘우사의 종묘의 사직단의 주요한 의미를 설명해주셨습니다.

모든 교재/ 실록의 스토리라인이 이 경국체계/육조체계에 의해 재구성 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원문을 최대한 많이 살려서 스토리텔링식의 주제는 물론 원석형태의 조선왕조실록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끔 구성을 완전하게 재개편을 해서 보다 좀더 “밀본”^^ 주제대로 정도전의 경국대전/경국체계하의 세종/이도의 업무 시스템은 물론 그 안에 녹여져있는 다양한 이야기와 리더십을 박현모 교수님의 직강으로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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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강에서 Facebook 지인인 한국도로공사 남궁성 박사님께서 등록을 해주셨습니다. 남궁성 박사님은 대한민국 고속도로의 교통흐름을 책임지시는 분으로 세상을바꾸는시간(세바시) 15분 - 진정으로 막힘없이 사는 법의 발표는 물론 명절때 어김없이 방송3사에서 멋지게 나타시는 분이십니다. 멋진 인생 답게 브롬톤을 끌고 .. ^^ (아울러 위의 사진 중 3장은 남궁성 박사님 Facebook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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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세종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이후 HOF 나눔에서 서로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조선의 협객 백동수의 저자 김용호 이사님께서 사회자로 “정”, “소통” 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던것 같습니다.

앞으로 15주 동안 이러한 이야기가 일어난다고 하니 지난 정조 때의 감동의 장이 다시 열리는 것 같아 설레네요.  정조때는 수강자 자격으로 들었는데, 어느덧 연구원 자격으로 함께하게 되네요.  2-3회차가 넘어가면 이해가되기 시작하면서 감동이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할텐데, 아직 망설이시는 분은 과감히 시간을 내셔서 수강하시길 강력 추천해드립니다. 원우회 선배님 중에 그 감동을 잊지 못해서 또 들으시는 분이 꽤 되신답니다.

 

 

 

 

세종대왕을 벤치마킹하라 – 제6기 세종실록아카데미로 우리만의 인문학을 경험해보세요.

2월 23, 2012 댓글 남기기

한국형리더십개발원에서 제6기 세종실록아카데미(부제:세종을 벤치마킹하라”)가 3월5일(월) 저녁7시부터 2시간30분동안 광화문 베세토갤러리에서 매주 월요일 총 15차례에 걸쳐 열립니다. 뿌리깊은나무에서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얽힌 이야기를 많이 보셨을 텐데요. 이번 “세종실록아카데미:세종을 벤치마킹하라”는 세종의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재임 시절 (초기/중기/후기)에 나눠 박현모 교수님께서 깊숙한 이야기와,  각 분야의 전문가께서 다각적으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실예정입니다.  박현모 교수님은 국내 최고의 세종/정조 권위자이실 뿐만 아니라 SERI CEO 스타강사 3분 중의 1인 이십니다.

저는 작년 가을에 열린 정조실록아카데미를 수강했는데요. IT-Guy인 제가 정조/역사 이야기를 얼마나 소화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강좌를 수강했었는데, 이런 배움을 통해 Global PMI PM 기법에 한국형정신인 인본주의/대인관계/리더십을 더하여 보다 풍성한 PM 내용 강의가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IT 팀장,PM, CIO 계층에 계시면서 우리의 인본주의적인 PM기법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은 본 과정을 과감히 추천드립니다. 저의 정조실록아카데미 후기인 정조이야기로 溫故知新 을 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글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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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프로그램 안내 및 신청서 다운로드 :  과정 안내 및 신청서

 

  1. 3/05 – 세종에게 길을 묻다(이청승) , 본강 : 인간 세종, 그는 누구인가? (박현모)
  2. 3/12 – 세종치세의 기반 닦기 :태종의 리더십 승계과정 (박현모)
  3. 3/19 - 세종의 조상과 친인척 관리 (이익주), 세종의 정치비전과 효도의 정치학 (박현모)
  4. 3/26 – 세종의 지식경영 (박현모)
  5. 4/02 – 경연(체험) : 세종처럼 회의하기 I (박현모)
  6. 4/09 –  인재경영 (박현모)
  7. 4/16 - 세종대왕이 실천한 한국형리더십(손욱), 위기경영(박현모)
  8. 4/23 – 민생경영 (박현모)
  9. 4/30 - 세종시대의 음악 (송혜진),  인의(仁義)경영  (박현모)
  10. 5/07 - 경복궁에서 만나는 세종대왕 이야기 (박현모)
  11. 5/12 - 세종시대의 미술(윤진영), 외교와 영토경영 (박현모)
  12. 5/21 – 창조경영 1 (박현모)
  13. 6/04 - 한글의 미학과 디자인의 미래(한재준), 창조경영 2(박현모)
  14. 6/11 – 세종정치의 빛과 그늘, 그 종합평가 (박현모)
  15. 6/18 - 경연(체험) : 세종처럼 회의하기 II (박현모)

 

다산 정약용 선생님으로 부터 배우는 우리의 가치 체계의 중요성

2월 6, 2012 3개의 댓글

다산 정약용 선생님 250주년하여 다산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기획자의 롤모델이라고 생각하고 정도전/정약용을 파고있는데요.. 다산정신의 ‘내수외학(內修外學)’ 정신을 공유합니다.

다산은 공예와 기술은 외국으로부터 배워야 하지만 도덕과 의리는 자주적으로 닦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그의 소위 서학에 대한 자기 비판적 태도를 표명한 것이었으며 이 사상을 계승한 ‘내수외학’의 표어는 민족의 자주 발전을 위한 개화운동에서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였다”(『실학파와 정다산』최익환 저. P.288)

 

다산 정약용선생님의 유배 생활 2년 시점에 두 아들에게 당부하는 처세 방법에서 제시한 마음에 만 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들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져야 한다는 근본적인 정신을 언급합니다.

반드시 처음에는 경학 공부를 하여 밑바탕을 다진 후에 옛날의 역사책을 섭렵하여 옛 정치의 득실과 잘 다스려진 이유와 어지러웠던 이유 등의 근원을 캐볼 뿐 아니라 또 모름지기 실용의 학문, 곧 실학에 마음을 두고 옛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자주 읽도록 해야한다.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은 뒤라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 ( 다산 정약용, 두 아들에게 쓴 편지. 1802.12.22. 강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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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체계/방법론은 Global 표준인 PMBOK/PRINCE2를 모델링하는 것이 맞지만, PM이 발휘해야하는 리더십/소프트스킬은 결국 우리민족의 가치/에서 태동되어야하죠. 이러한 인문고전은 철저하게 우리의 조선시대의 실록/의궤뿐만아니라 각종 문학서 등에서 도출되어야할 것 같습니다.

 

팝송의 멜로디는 와닿지만, 가사는 잘 안 와닿는 것 처럼요.  멜로디에 한글 가사를 통해 우리의 감성을 실어주는 가요의 감성적 터치처럼…. 가르치지 않아도 내안에 잠든 우리의 인본주의 정신이 발휘되로록요. 프로젝트리서치에서 이러한 기획자 롤모델로 정약용, 정도전을 잡고 선인들의 철학/방법론을 현대적으로 전략가/기획자로 재해석하여 확산하는 노력을 하려합니다. 많이 힘 북돋와 주세요.

최근 정약용의 수원화성 기획을 놓고 스토리텔링식으로 접근한 이지은 선생님 글도 좋고요, 반년전 잘 모를때 썼던 기획 및 연구자의 롤모델이 되는 다산 정약용 – 茶山 丁若鏞 정리 글도 있네요. 좀 더 파고 싶으신 분은 다산 정약용에 대해 국내 최고 전문가인 백민정 박사님의 강의실에서 찾아온 유학자들 : 공자에서 정약용까지, 대표 유학자 13인이 말하다 이나 정약용의 철학 : 주희와 마테오리치를 넘어 새로운 체계로 도서 추천드립니다.

 

큰그림으로 PM을 바라봐야, Detail을 챙길 수 있습니다.

1월 12, 2012 댓글 남기기

흔히 프로젝트관리체계의 Framework 혹은 로드맵을 이야기할때, 제가 말씀드리는 핵심은

(1) 잣대가 있어야 한다./PMBOK

(2) PM지식도 중요하지만 IT 분야는 인문/창조리더십 + 프로젝트리더십 + 운영관리 의 조화로움

이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라고 얘기합니다. 미국 PMI PMBOK 및 유럽/영국 OGC PRINCE2 체계를 가장 기본으로 하여 프로그램, 포트폴리오 구분 및 지식 체계를 다 알아야 전체 Bird-View 측면으로의 전체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며, 이것이 PM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한 기준이 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기준 잣대를 세워야하고, 이에 기반한 Self 역량진단하에서 장점을 강화, 단점을 보강하는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Technical은 Global Standard를 준수하고, 리더십/대인관계 부분은 한국형을 모범 사례를 Role Model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Global Project Management Leadership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외국것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아닌, 외국것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테일러링하고, 이를 우리의 인본주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승화시키는 모습.. 정말 멋지지 않나요?

그런면에서 제가 생각하는 큰그림을 공유할까 합니다. 약간은 추상적이지만.. 이를 기반으로 Detail하게 들어가는 것이 옳다라고 보여지고, 현재도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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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용의 힘찬 기운으로 정도전의 기획력, 이순신의 추진력과 화룡점정의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2012 임진년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제 블로그 독자 분들도 올해 용의 기운으로 모든 업무가 이뤄지길 기원하며, 이러한 용의 기운과 관련된 세가지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1. 기획력 – 정도전의 근정전과 사정전 속에 담겨진 근면함과 생각함
  2. 추진력 – 이순신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3. 마무리 – 화룡점정(畵龍點睛)

 

기획력 – 왕의 집무실 근정전(勤政殿)과 사정전(思政殿)에 담긴 정도전의 이야기와 용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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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 © 지노(macros98)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에게 경복궁 내의 왕의 행사관련 집무처인 근정전을 ”임금의 부지런한 자세가 정치의 으뜸”의미라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폐하게 됨은 필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임금의 부지런한 것만 알고 그 부지런할 바를 알지 못한다면, 그 부지런한 것이 너무 복잡하고 너무 세밀한 데에만 흘러서 볼 만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선유(先儒)들이 말하기를,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낮에는 어진 이를 찾아보고, 저녁에는 법령을 닦고, 밤에는 몸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 임금의 부지런한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어진 이를 구하는 데에 부지런하고 어진 이를 쓰는 데에 빨리 한다.’ 했으니, 신은 이로써 이름하기를 청하옵니다. (1935 태조, 08/10/07)

 

아울러 평소의 논의/토론을 위한 집무처인 사정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잃어버리는 법입니다.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생각하면 슬기롭고 슬기로우면 성인이 된다.’ 했으니, 생각이란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 쓰임이 지극한 것입니다. 이 전(殿)에서는 매일 아침 여기에서 정사를 보시고 만기(萬機)를 거듭 모아서 전하에게 모두 품달하면, 조칙(詔勅)을 내려 지휘하시매 더욱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신은 사정전(思政殿)이라 이름하옵기를 청합니다. (1935 태조, 08/10/07)

 

이러한 중요한 왕의 우선인 덕목인 “부지런함과 숙고함”의 자리에는 용이 목각되거나 그림으로 치장되었습니다. 이러한 정도전의 조선건국 전략 및 태조 이성계와 사대부들을 설득시킨 스토리텔링 기법역시 배워야할 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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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력 – 이순신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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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다. 수(數)가 적은 수군으로써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다. 그래서 진을 우수영 앞바다로 옮겼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면서 이르되, “병법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했으며,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이라도 두렵게 한다’고 했음은 지금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살려는 생각은 하지 마라.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면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다”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 이날 밤 신인이 꿈에 나타나,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일러 주었다. -이충무공전서  9월15일[계묘/10월25일]의 일기

 

당시 명량해전 직전까지 이순신이 동원할 수 있었던 배는 군함 12척 뿐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칠천량에서 승리한 일본 수군은 최소 133척 이상의 군함으로 이뤄져 있었지요. 칠천량의 패전의 손실이 커서 선조는 한때 수군을 폐지하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순신은 선조에게 장계를 올려 수군 폐지 불가론을 펼칩니다.

지금 신(臣)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나이다.신이 죽지 않는 한 적들은 감히 저희들을 업신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이러한 이순신 장군의 용맹스러움 속의 철저한 RISK 준비 대응의 추진력은 본받아야 할 점 인 것 같습니다.

 

 

 

마무리 – 화룡점정(畵龍點睛)

畵(그림 화), 龍(용 룡), 點(점찍을 점), 睛(눈동자 정) 단어로 용을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린다는 뜻으로 가장 요긴한 부분을 마치어 일을 끝냄을 이르는 말로써,  무슨 일을 할 때 최후의 중요한 부분을 마무리함으로써 그 일이 완성되는 것이며, 또한 일 자체가 돋보인다는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양(梁)나라의 장승요(張僧繇)가 금릉(金陵:南京)에 있는 안락사(安樂寺)에 용 두 마리를 그렸는데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상히 생각하여 그 까닭을 묻자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용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며 용이 벽을 차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용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 수형기(水衡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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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그린 민화 © 천지일보

 

프로젝트리서치의 2012년 임하는 자세

프로젝트리서치의 2012년 임하는 마음역시 이러한 기획력, 추진력과 마무리로 화룡정점을 찍는 한해가 되고자합니다.

  1. 한국형프로젝트DNA 9선을 현대화 방법론/템플릿을 적용하여 확산
  2. 한국형프로젝트관리기법 고급과정 온고지신 확산
  3. 한국형 Agile/애자일 방법론 확산
  4. 한국형 창조리더십 프로그램 법고창신 신규 런칭
  5. 한국형 PM 사관학교 프로그램 신규 런칭

이렇게 5가지를 목표로 하여 정도전의 전략/스토리텔링과 이순신의 필사즉생 必死則生 정신을 통해 화룡정점을 찍겠습니다.

 

한국형 프로젝트리더십 세미나 후기

12월 19, 2011 댓글 남기기

PM 전문가 분들을 모시고 한국형리더십개발원에서 “한국형 프로젝트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수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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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창조리더십 – 한국형리더십개발원 김여옥 이사, 박현모 교수

세종의 K21 창조리더십 주제로 K21 창조물의 내용과 이를 위한 3요소-11역량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세종시대의 창조물들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낼 수 있었던 보편적 원리로 天地人의 정신을 설명해주셨습니다.

개인의 비전과 국가 비전을 연결시키는 지도자의 능력과 백성의 수준을 높이는 일이 나라 근본을 튼튼하게 하는 일이라며  시간, 문자를 백성에게 선물한 것과 세종 어록으로는 ”천재지변이 있고 없는 것은 인력으로 할 수 없다. 하지만 배포조치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다할 수 있다” 는 것을 강조하며, 사업관리/프로젝트관리 체계의 중요성도 언급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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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국내 PM 트렌드 PMI 한국챕터 박영민 회장

국내 대부 수준의 전문가 답게 전세계, 한국 PM 체계와 2012년 발의되는 ISO 표준 PM 체계인 ISO21500 체계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결론으로 기술적인 측면의 PM 체계는 글로벌 표준 체계를 따르는 것이 맞으며, 사회문화적인 측면을 한국형으로 접근해야하며, 이를 위해서 한국형리더십개발원과 연합하여 한국형 인문학을 포함한 한국형프로젝트리더십 체계를 더욱더 발굴하고 보급하자는 제언을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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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업관리, 프로그램 관리 트렌드 – Knorr-Bremse 백광구 부장, PgMP

해외 글로벌 회사들은 잘 구분하여 관리하는 프로젝트, 프로그램의 차이점 부터 시작하여서, 프로그램관리의 다양한 사례, 프로젝트와 구별되는 핵심 이론, 아울러 직접 연구하신 국내외 다양한 회사에서의 프로그램 운영 사례에 대한 현황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사업관리/프로그램 관리가 우리에게는 상당히 익숙하지 않는 개념인데, 의외로 질의응답 시간이 발표 시간만큼 버금가는 관심도를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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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C의 새로운 발전 경향  한국TOC협회 김현식 회장

문제해결 및 변화혁신 모델을 다 가지고 있는 TOC에 대한 약력과 현재의 발전 트렌드에 대해서 언급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TOC을 잘 활용하게 되었을때에는 전략과 전술, 협상, 갈등및문제해결, 의사소통, 사업기획, 청소년교육,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두루두루 하지만 매우 구체적인 사안으로 커버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한국형리더십개발원과는 경영전략, 문제해결, 장애극복, 갈등해소, 의사소통, 세종식논술 등 다양한 형태의 프레임웍을 개발하자고 제언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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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관점으로 바라본 역사문화환경 보전 사업 – 경원대 이지은 석사

손정목 박사님의 “수원 화성은 세계 최초의 계획된 신도시”라고 강조하면서, 정조의 수원화성의 관리 체계(1794), 화성행궁복원사업(1994), 화성복원정화사업(1975), 세계문화유산 ‘화성’ 수리사업 (1988)을 각각 PM 기법적용, 지식영역별, 단계별, 해외사례까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여, 우리의 현재 보전/관리 체계가 한참 부족하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이의 극복을 위해 1조원 이상이 되는 화성복원사업에 해외수준에 맞는(아니 적어도 200년전의 화성 건설 프로젝트에 못지않은) 프로젝트관리기법을 적용해야함을 강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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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박영민 회장님과 박현모 교수님께서 우리 한국형 프로젝트 리더십 및 관리 체계의 중요성, 방향에 대해서 마무리를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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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미나는 한국학을 전공으로하는 “한국형리더십개발원”과 PM산업의 전문가가 모여서 “법고창신(인문/창조리더십)”, “온고지신(사업/프로젝트관리리더십)” 및 기업운영체계(경국체계/6조체계)에 대해 융합의 방향을 모색하는 매우 뜻깊은 자리였고, 빠른 시간내에 이러한 융합의 결과물들이 하나하나 도출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한국형리더십을 통해 다른 산업계의 연계/융합을 통한 확장 보급에 관심있는 분은 언제라도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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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리더십개발원의 비전 수립 워크샵을 정조방식(진단>비전>처방)으로 진행했습니다.

12월 7, 2011 댓글 남기기

제가 연구원으로도 몸담고 있는 (사)한국형리더십개발원에서 2012년 비전 수립 워크샵을 진행했습니다. 12월16일에 있을 “외국인을 위한 실록 학술회의” 진행 사항 회의하고, 한국형 마샬아트인 JUMP 공연 관람, 저녁식사 후 한국형리더십개발원 답게 토론/결과물 도출 방식을 정조의 경장대고를 모델로 하여 진단>비전>처방 의 순서로 Visual Planning 방식을 융합하여 결과를 도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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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정조의 국내 최고 권위자 박현모 교수님, 세종과 정조식 소통 전문가 김기섭 이사님, 저, 다산 정약용의 철학적 분석 전문가 백민정 교수님, 청소년리더십 멘토링 전문가 최형미 국장님, 고려사 전문가 최형식 책임님, 이순신 리더십 전문가 국정호 소령님, 한국무예의 달인 김영호 이사님이십니다.

 

visual dashboard

이른바 세종식 끝장 토론으로 밤 10시에 시작해서 새벽 4시에 끝냈습니다. 이번 “정조경장대고방법론”을 통해 과거의 현황, 주변 상황, SPOT(SWOT) 을 토론하면서 도출한 이야기들의 정리와 아울러 세종창조리더십/한국형리더십의 기업형 표준 모델 지속적인 개발 및 보급의 중요성과 이를 뒷바침해주는 사업관리시스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더 인식하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프로젝트리서치에서 진행하는 기업체 한국형 프로젝트 관리 체화 “온고지신” 프로그램을 실록/의궤를 통해 건실한 컨텐츠 확대와 기업진단 프로그램까지 확대발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S사 시행중인 기업용 PM고급체화과정인 “온고지신”을 공개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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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이야기로 溫故知新 을 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11월 30, 2011 1개의 댓글

9월19일 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한국형리더십개발원 박현모 교수님으로부터 “정조이야기” 특강을 총 10 차례에 걸쳐서 들었습니다.  세종대왕의 국내 최고의 권위자인 박현모 교수님의 박사 논문은 정조이십니다. 전문가 답게 정조를 다각적인 면으로 설명해주셨습니다.

제 경우 정조의 수원화성에 대해 특화하여 한국형 프로젝트리더십에 대해 기업체 특강을 진행하는 관계로, 정조 및 다산 정약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환경속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하셨는지에 대해 때론 200년전의 시대로 돌아간 것 처럼 착각에 빠져 들 정도로 다각적인 분석과 스토리텔링 이야기로 감동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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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조시대의 유산 (후기)
  2. 경연 및 문예부흥 (후기)
  3. 노론의 정치론과 정치술
  4. 지식경영 / 경연 (후기)
  5. 탕평정책, 인재정책
  6. 개혁정치 (후기)
  7. 군제개혁
  8. 수원화성건설
  9. 정조의 재판
  10. 정조의 죽음

 

특강으로 진행된 내용에서도 지식리더십, 국가전례, 무예, 건축 및 다산 정약용에 대해 전문가가 느끼는 정말 깊숙하고 정제된 이야기를 통해 그 당시의 분위기, 철학, 군사, 건축 등 다방면의 내용도 이해하고 섭렵할 수가 있었고, 이를 통해 정조를 더 깊숙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1. 18세기 문예부흥과 정조의 지적 리더십, 정순우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2. 국가전례와 음악, 송지원 교수(서울대)
  3. “무예도보통지” 속의 병장기, 김영호 대표 (무예24기)
  4. 정조시대의 건축, 김봉렬 교수(한예종)
  5. 정약용의 수양론과 경세학, 백민정 교수 (성균관대)

 

아울러 마지막 종강시간의 “정조, 서얼 허통 문제로 고뇌하다!” 주제로의 상황극 재현으로 정조를 더욱 깊숙히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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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수업을 같이 듣는 호주정부관광청의 최승원 지사장님께서 직접 푸짐한 선물도 많이 협찬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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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이번 정조1기 종강을 기념해주시기 위해서 세종1기 (총5기까지 있으십니다) 선배님께서 오셔서 격려해주시고 박현모교수님의 세종이야기를 어떻게 감동받았고, 어떻게 실 생활에 적용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시는 뜻 깊은 시간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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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세종예술아카데미의 배고플까 저녁 식사/음료, 윤건릉 현장 참여, 때론 10시가 넘게까지도 싫은 내색 없이 정말 열심히 지원해주시고, 종강 역할극때의 의상까지 협찬은 물론 매회 일 있을때마다 연락을 마다않고 다 해주셨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아도 보았고, 진행도 해 보았지만 정말 이러한 교육 시스템이 고맙기도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왼쪽 맨 끝에 앉아계신분이 교육 담당자 도준 대리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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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1기 회장직을 수행하실 박순천 대표님이 종강과 교수님의 생일을 기념하여 대표 선물(훈민정음 넥타이)와 꽃다발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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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강파티에서는 서로 돌아가며 정조에 대한 느낀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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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및 PM분야에만 종사해온 저에게는 “한국형리더십개발원”과 인연을 맺게되어 한국형프로젝트관리기법에 대해 더욱 풍성하게  멘토링을 받으며 연구할 수 있는 인연을 맺게 되어서 너무나 행복합니다. 프로젝트리서치 대표로써 또한 한국형리더십개발원의 책임연구원으로써 한국의 고유한 프로젝트기법이 더욱 견고해지고, 이를 기업체에 보급되어 널리 확장될 일을 생각하니, 더욱 더 가슴이 뛰는 것 같습니다. 박영민 회장님, 박현모교수님, 최형미국장님, 김영호이사님, 김기섭이사님, 국정호팀장님, 최문식 책임님, 백민정 교수님, 그리고 도준대리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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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개혁 기법 속에 현대의 경영기법이 그대로 적용됨에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11월 15, 2011 댓글 남기기

최근 일이 너무 많아, 정조의 내용 정리를 2회차나 올리지 못했네요. 어제 강의 내용마저 정리를 못하면 저만 알고 묻혀버릴 것 같아 우선 이 내용을 먼저 정리합니다.

정조의 시대는 태조/태종의 창업시대 > 세종/성종의 수성시대를 겨처 영조의 대를 이어 경장更張의 정치를 벌여야만 했습니다. 경장이란 거문거의 줄을 고친다/조인다의 의미로 시대적 상황이 사회 전반에 걸친 시스템을 개혁해야하는 시대였습니다.  이를 위해 정조가 해결하기 위한 비유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나라를 치료하는 것과 같다. 유추해보면 배울 것이 많다”며 ▲ 진단,  ▲ 지향목표/비전, ▲ 처방의 순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치국을 한다라고 함은 나라의 병을 다스리는 일로써 이를 진단하여 목표(비전)을 수립하고 처방을 내려하는 구조로, 대표적인 예가 정조의 7대 연설 중의 하나인 경장대고 (정조 2/6/4) 이다.  이를 요약하는 것 보다는 실록의 원문을 그대로 살려 임기 3년만에(세종은 4-5년간 상왕 태종의 밑에서 삼가고 조심하면서 국왕 수습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좀 길긴하지만, 그 220년 전의 조선의 시대상황과, 정조가 이를  어떻게 진단하고, 목표/비전을 수립하여, 향후 20년간의 경장/국가운영을 추진하는 뼈대가되는지에 대해 직접 같이 느꼈으면 합니다.

 

민산·인재·융정·재용에 관한 대고를 선포하다 (경장대고, 1778년 정조 2/6/4)

 

[배경]

 

인정문(仁政門)에 나아가 조참(朝參)을 받고, 대고(大誥)를 선포하기를,
“과인(寡人)이 열조(列祖)의 큰 서업(緖業)을 이어받았기에 낮이나 밤이나 공경하고 두려워하기를 마치 깊은 못의 얼음을 밟듯이 해 온 지 이제 3년이 되었다. 우리 영종 대왕(英宗大王)을 부묘(祔廟)하는 예제(禮制)가 이미 끝나고 의문(儀文)도 즉길(卽吉)했으므로, 이에 곤면(袞冕) 차림에 종고(鍾鼓)를 차리고서 태묘(太廟)를 지알(祗謁)한 다음에 군신(群臣)들의 조하(朝賀)를 받았는데, 이 예식(禮式)은 곧 선왕(先王)들의 예법이다. 오직 소자(小子) 내가 선왕의 자리에 서서 선왕의 백성에게 임하게 되었으니, 감히 선왕의 마음과 같이 마음을 먹고 선왕의 정사(政事)와 같이 정사를 하여 우리 선왕께서 뜻하시던 일을 그대로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제 일초(一初)의 처음을 꾀하는 기회를 당했으니 군신(君臣) 상하(上下)가 마땅히 서로 닦아 가는 도리를 힘써야 한다. 이에 대궐 뜰에서 탄고(誕誥)하게 된 것이다. 그 조목에는 무릇 네 가지가 있는데 민산(民産)과 인재(人材)와 융정(戎政)과 재용(財用)에 관한 것이다.

[민산 民産: 백성들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겠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무릇 그 사람들을 바로잡아 가는데 이미 부유해지게 해주어야 바야흐로 착해지게 되는 것이다.’ 하였고, ‘백성의 살림살이를 제정(制定)하는 데에는 반드시 경계(經界)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상고(上古)의 정전(井田)1304) 의 법은 더할 나위 없는 것이고, 오직 명전(名田)1305) 한 가지 일이 가장 근고(近古)의 것인데,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이래에는 일찍이 시행하지 않았다. 우리 동방(東邦)에 있어서는 땅덩이가 편소(褊小)한데다가 산과 계곡이 대부분이어서 정전(井田)의 경계(經界)를 설시(設施)하기 어렵기도 하고 호우(豪右)1306) 들이 모두 제것으로 만들고 있기에, 조종조(祖宗朝)의 융성(隆盛)한 시절부터 균전(均田)이나 양전(量田)의 의논을 정지하고 시행하지 않았었으니, 대개 풍습이 된 세속을 고치기도 어렵고 뭇사람이 시끄럽게 이야기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 민생들의 먹고 사는 길이 오직 부지런히 농사 짓는 데 달려 있건만 사람들이 각기 제 전토(田土)를 소유하고 있지 못한다면, 비록 힘을 다하려고 한들 어떻게 하게 될 수 있겠느냐?
공업(工業)과 상업(商業)은 말단의 직무이지만 민생들이 이를 힘 입어 의식(衣食)을 유족하게 하여 오히려 이용 후생(利用厚生)하는 거리로 삼고, 천택(川澤)의 생리(生利)로 말하면 바닷가의 지역에서도촉고(數罟)1307) 를 쓰지 않고 있음은 시기(時期)에 맞추어서 하려는 것이 아니라, 곧 민생들의 힘이 고갈되어 버리고 국가의 부세(賦稅)가 무겁게 되어서이다. 또 동남쪽 바다에서의 어산(魚産)이 대부분 요동(遼東)과 발해(渤海)로 돌아가버리게 된 것은 지리(地理)의 변천으로 그렇게 된 것이겠느냐? 초채(樵採)의 생업(生業)으로 말하건대, 그전에는 우거져 있던 것들이 지금은 민둥민둥하게 되었으니, 이는 궁방(宮房)들이 마구 점유(占有)해서가 아니면 아문(衙門)들이 양탈(攘奪)해서임을 알 수 있다. 저 가마솥을 씻어 놓고 땔감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눈 속에서 간신히 구득해 온 것이 또한 얼마나 될 수 있겠느냐? 방적(紡績)의 여공(女工)으로 말하건대, 열 손가락에서 생산되는 것이 모두 현관(縣官)에게 실어다 주어버리게 되고, 앙병(盎甁)의 저축으로 말하건대, 백묘(百畝) 농사의 나머지가 과부(寡婦)에게 미치지 못하게 된다.
아! 한 도(道)를 안찰(按察)하고 그 고을을 맡은 신하들이 이미 자신이 직책을 다하여 민생들의 심지(心志)를 안정되게 하지 못하고 따라서 탐묵(貪墨)한 아전들이 문부(文簿)를 농간하여 사리(射利)1308)하느라 살갗을 방망이질하여 골수(骨髓)를 긁어내므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없게 된다. 군적에 올림[簽丁]이 젖먹는 어린이에도 미치어 아이들도 면하지 못하게 되고 저 백골(白骨)에게도 징세(徵稅)하여 향당(鄕黨) 전체가 곤궁하게 된다. 향리(鄕里)에서 무단(武斷)1309) 하는 짓을 하고 우민(愚民)에게 잔학(殘虐)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자못 강동(江東)의 삼해(三害)보다도 심하게 되는데, 무릇 이러한 폐단을 하나하나 들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갖추어져 있는 규례(規例)를 들어 말하건대 사설(司設)의 상평창(常平倉)에 명칭이 토포(討捕)라는 제민사(濟民使)를 두어, 가을에 곡식이 익으면 등급을 구분하는 격식(格式)을 반포하고 겨울이 다 가고 나면 봉납(捧納)을 정지하도록 하는 영을 내리게 하고 있다. 또한 그 해에 흉년이 들면 곡식을 옮겨 오고 경사(慶事)를 만나면 전조(田租)를 감해 줌은 수해(水害)와 한해(旱害)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요, 도적(盜賊)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며, 민생의 기아(飢餓)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요, 낙(樂)을 민생들과 함께 하기 위한 것이다마는, 이는 모두가 소소한 혜택인 것이니 어찌 민생들의 살림살이를 제정(制定)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근본에 있어 힘쓰라고 한다면 어찌 그렇게 할 방도가 없겠느냐? 그러기에 ‘비록 일명(一命)1310) 의 사(士)라 하더라도 진실로 애물(愛物)하는 데 마음을 둔다면 사람에게 있어서 반드시 구제(救濟)해 가는 바가 있게 되는 것이다.’고 한 것이니,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인재 人材: 인재를 양성하겠다.]


《시경(詩經)》에 ‘여러 왕(王)은 길사(吉士)가 많다.’고 했었거니와, 인재(人材)를 성취(成就)시키는 것은 반드시 교육으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태상(太上)에는 빈흥(賓興)1311) 을 하였고 그 다음은 향거(鄕擧)1312) 인데, 수(隋)나라와 당(唐)나라로 내려오면서는 오로지 과거(科擧) 제도를 숭상하게 되었다.
우리 동방(東邦)에 있어서는 성자 신손(聖子神孫)이 서로 계승해 오며 유현(儒賢)들이 배출(輩出)하게 되었기에, 그 시절에는 낭묘(廊廟)의 인재(人材)도 있고 간성(干城)의 인재도 있으며 방악(方岳)의 인재도 있었고, 백집사(百執事)들에 있어서도 모두 적재(適材)를 임용(任用)하게 되어, 조정에는 휘정(彙征)1313) 하는 미덕(美德)이 있게 되고 초야(草野)에는 유일(遺逸)의 한탄이 없게 되어, 인재가 일어남이 이제서야 융성(隆盛)하게 되었었다.
아! 인재를 작성(作成)하는 방도는 오직 배양(培養)과 교육인 것인데, 평소에 배양이 있지도 못하고 교육하는 방법이 있지도 못하여 이미 덕(德)과 문예를 훈적(訓迪)해 가는 것이 없고 단지 과목(科目)으로만 취사(取捨)하고 있는데, 고시(考試)를 두고 말을 하자면 조정에서는 매양 고관(考官)들을 의심하고 있고 고관들은 문득 사자(士子)들을 속이는 짓을 하고 있다. 상하(上下)가 이처럼 믿지 못하고 있으니, 이러고서 어떻게 준수(俊秀)한 영재(英才) 들을 찾아내어 국가의 수용(需用)이 되기를 바랄수 있겠느냐?
현관(賢關)1314) 은 수선(首善)의 자리인 것인데 경서(經書)에 통달한 사람이라는 소문을 들어보지 못하겠고, 상서(庠序)는 인재를 배양하는 본거지(本據地)인데 한갓 문사(文詞)만 숭상하는 데가 되어버려, 순후한 세속(世俗)이 더욱 투박해지고 홍장(鴻匠)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무과(武科)나 의과(醫科)나 역과(譯科)나 음양 율력과(陰陽律曆科)에 있어서도 모두 폐단이 그러하여 다같이 똑같은 전철(前轍)을 답습(踏襲)하고 있다. 전선(銓選)으로 말하건대, 감별(鑑別)하는 지혜는 밝지 못하고 요행(僥倖)을 노리는 문만 크게 열리어 출척(黜陟)은 고적(考績)을 따르지 않고 주의(注擬)는 관(官)을 위한다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청현(淸顯)의 관함(官銜)은 어느 시대에 시작된 것인지 경상(卿相)의 진출(進出)을 매개(媒介)하는 계제(階梯)가 되어 있고, 지벌(地閥)에 따라 임용(任用)함은 더없이 의의(意義)가 없는 것으로서 한준(寒畯)1315) 들은 발신(發身)할 길이 없게 만드는 일이다. 교육(敎育)과 전선(銓選)의 방법이 위와 같이 잘못되어 있으니, 비록 다스려진 세상을 이루려고 하더라도 또한 어긋나지 않겠느냐?
갖추어져 있는 규례(規例)를 들어 말하건대, 자급(資級)을 따르는 법은 외람(猥濫)됨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견서(甄敍)1316) 의 규정은 침체(沈滯)되어 있는 사람을 소통(疏通)시키기 위한 것이다. 염절(廉節)의 포양(褒揚)은 자손에게까지 미치고 탐묵(貪墨)의 징계는 죽을 때까지 이르며, 정부(政府)에서는 방백(方伯)의 인재를 추천하고 번신(藩臣)은 유일(遺逸)의 선비를 천거해 왔는데, 이는 모두가 말절(末節)의 것이니, 어찌 인재를 성취시켰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근본에 있어 힘쓰려고 한다면 어찌 그런 방도가 없겠느냐? 그러기에 ‘주(周)나라 문왕이 수고(壽考)하는데 어찌 인재를 진작시키지 않겠느냐?’고 하였으니,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용정 戎政: 국방을 개혁하겠다.]


《역경(易經)》에 ‘문을 겹으로 달고 딱다기를 쳐서[擊柝] 폭객(暴客)을 대비(待備)한다.’고 했다. 융정(戎政)을 다스리는 것은 반드시 제치(制置)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성주(成周) 시대의 군사는 사도(司徒)에 병적(兵籍)을 두고 사마(司馬)에 소속했었으니, 군사를 농군(農軍)에다 붙여 놓았던 것이다.한(漢)나라의 남군(南軍)·북군(北軍)과 당(唐)나라의 16위(衛)와 송(宋)나라의 동·서반(東西班)과 황조(皇朝)의 12위(衛)는 다같이 장단(長短)의 구별이 있은 것으로서, 농군과 군사가 이때부터 구분되어졌던 것이다.
우리 동방(東邦)에 있어서는 문치(文治)로 나라를 세우고 무략(武略)도 또한 갖추었었다. 부병(府兵)에서 삼군(三軍)이 되고 삼군에서 오위(五衛)로 했었는데, 내부(內部)에는 총관(摠管)을 두고 외부에는 진영(鎭營)을 설치하여 각각 통령(統領)을 두고 병마(兵馬)가 일체(一體)가 되었었으며, 관(官)이 늠희(廩餼)를 허비하는 것이 없고 군사는 정예(精銳)의 칭호가 있다. 비록 고려 말기(末期)의 폐단을 징계 삼았던 것이나 또한 주(周)나라 초기(初期)의 법을 모방했던 것이다. 이러므로 수비(守備)를 굳건하게 하고 공격을 하면 이기게 되었던 것이며, 임진년1317) 이후에는 비로소 훈국(訓局)을 두었는데 이로부터 분군(分軍)의 제도가 만들어지고 드디어 오위(五衛)를 폐하게 되었던 것이다. 거듭 모병(募兵)하여 영(營)을 설치하고 부(部)를 나누어 국(局)을 설치하고, 또 기보(畿輔)의 군사를 갈라서 거느리게 하고서는 혹은 병사(兵使)라 부르고 혹은 대장(大將)이라 부르게 된 것인데, 이는 모두 다 조치(措置)가 번잡하게 되고 연혁(沿革)이 무상(無常)하게 된 것이었다. 이 이외에도 곤외(閫外)를 절도(節度)해 가는 제도가 혼란스러워 기강이 없고 곤내(閫內)에 비하여 더욱 몇 갑절이나 되었다.
제승(制勝)의 방략(方略)을 두고 말하면 장수는 범처럼 굳센 위엄이 없고 군사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이 되는 염려가 있었으며, 삼군(三軍)을 오영(五營)에 나누어 소속하고서 이 오영이 각기 하나씩의 영을 전관(專管)하였으니, 군사가 가병(家兵)의 폐단이 다문(多門)하게 되는 염려에 가깝지 않겠느냐? 연습(鍊習)하는 방법을 두고 말한다면 《육도삼략(六韜三略)》과 손빈(孫殯)·오기(吳起)의 병서(兵書)는 고각(高閣)에 묶어 놓고서 장조(場操)와 수조(水操)의 격식은 문득 아이들의 놀이처럼 여기게 되었다. 대개 척법(戚法)이 나오면서는 옛적의 제도가 무너져버리게 되었기 때문인데, 소위 왜적(倭賊)들을 방어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오히려 방도를 다하지 못하게 되었거든, 더구나 사방 국경(國境)에 있어서의 미리 대비하는 군적(軍籍)을 두고 말한다면 한정(閑丁)이 날마다 줄어들게 되고, 마정(馬政)으로 말한다면 목축(牧畜)이 번성하게 되지 못하며, 양병(養兵)하는 방도로 말한다면 군향(軍餉)도 배포(配布)하고 군보(軍保)도 설시하여 법 세우기를 처음부터 치밀하게 하지 않은 것이 아니건만, 더 거두는 폐단이 흘러 오게 되어 온 나라 재부(財賦)의 절반을 가져다가 하나의 미려(尾閭)1318) 와 같은 데를 만들어 놓게 되었다. 만에 하나라도 변방에 전진(戰塵)의 경보(警報)가 있게 되어 우격(羽檄)1319) 이 방오(旁午)1320) 하게 된다면, 이와 같은 제치(制置)로는 비록 옛적의 명장(名將)에게 곤외(閫外)의 임무를 맡게 한다 하더라도 계책과 방략(方略)을 펴가게 되지 못할 것이 뻔하니, 참으로 이른바 ‘근본이 올바르지 못하면 말단에서는 구제해 갈 수 없는 것이라.’고 한 말과 같은 일이다.
갖추어져 있는 규례(規例)를 들어 말하건대, 일성(日省)과 월시(月試)는 강습(講習)시키기 위한 것이고, 상(賞)을 후하게 주고 벌을 가볍게 함은 격려(激勵)하기 위한 것이며, 천경(踐更)1321) 은 노력과 휴식을 균등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호군(犒軍)은 고락(苦樂)을 같이하기 위한 것이다. 영(營)에는 각각 장수를 두되 대신(大臣)이 영도(領導)하고 문사(文士)가 보좌(補佐)하게 하였고, 대소(大小)의 영진(營鎭)에 있어서도 다같이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을 두어 각기 서로 유지(維持)해 가고 견제(牽制)해 가도록 했으니 이것이 그 대략이다마는, 어찌 융정(戎政)을 잘 다스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겠느냐? 근본을 힘쓰려고 한다면 어찌 그만한 방도가 없겠느냐? 그러기에 ‘군자는 싸움을 하지 않을지언정 싸움을 하면 반드시 이긴다.’고 하였으니, 그렇게 되어지지 않겠느냐?

[재용 財用: 국가 재정을 튼튼하게 하겠다]



경서(經書)에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재용(財用)을 넉넉하게 하는 길은 반드시 저축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하(夏)나라에는 공법(貢法)을 쓰고 은(殷)나라는 조법(助法)을 쓰고, 주(周)나라는 철법(徹法)을 쓰고, 한(漢)나라는 삼십세법(三十稅法)을 쓰고, 당(唐)나라는 조용법(租庸法)을 썼으니, 시대마다 각각 제도가 달랐지만 모두가 아랫 백성들을 유익하게 하는 정책이었다.
우리 동방(東方)에 있어서는 그 땅에서 나는 것에 따르며 토질(土質)의 비옥(肥沃)을 구별해서 그 등급을 세 가지로 하되, 부(賦)에다가 공법(貢法)을 섞어서 하여 공(貢)과 부(賦)가 균등하게 되어 있다. 이래서 국가에는 항시 저축(儲蓄)이 있게 되고 민생들은 생업(生業)을 즐거워하게 되었던 것이다. 근래에는 경비의 용도(用度)가 점차로 넓어져 공용(公用)이나 사용(私用)이 다 같이 곤란해지므로, 재물을 거두어 들이는 방도에 있어서 이미 남기어 놓는 것이 없이 하게 되었고, 재물을 소모하는 길에 있어서도 거의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탕저(帑儲)로 말하건대, 한 해의 수입이 한 해의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고, 용관(冗官)과 용병(冗兵)들이 먹는 것이 10에 7, 8을 차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각기 관부(官府)를 두고서 전곡(錢穀)을 나누어서 관장(管掌)하게 되어, 판조(版曹)에서 지출과 수입의 액수(額數)를 전관(專管)하지 못하게 되고, 혜국(惠局)에서도 대소(大小)의 공급을 관할할 수 없게 되었다. 폐해가 잘못을 답습(踏襲)하는 데에 있게 된 것인데도 폐단이 고질이 되어 그대로 인순(因循)하고 있다. 창름(倉廩)의 평적(平糴)과 화조(和糶)로 말하건대, 제도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이미 오래도록 연습(沿襲)해 오면서 옛적 본래의 뜻이 점차로 없어지게 되고, 적렴 조산(糴斂糶散)이 합당하게 되지 못하여 탐심(貪心)을 부리는 폐단스러운 법이 되어버렸다. 안으로는 경사(京司)와 밖으로는 열읍(列邑)들의 부정(不正)을 저지르는 명목(名目)과 근거가 없는 명색(名色)이 얼마인지를 알지 못하게 되었으니, 계책은 먹을 것이 있게 하려는 데에서 나온 것이지만 도리어 민생들이 해독을 받게 된 것이다. 비기(肥己)하는 폐해가 점차로 퍼지며 따라서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게 되었으니, 이러고서는 비록 날마다 포리(逋吏)들을 죄주고 날마다 곤궁한 백성을 독촉을 한들 무슨 유익함이 있겠느냐?
정각(征榷)1322) 으로 말을 한다면, 관시(關市)에서 정세(征稅)하지 아니하고 택량(澤梁)을 금단하지 아니하였음은, 성왕(聖王)들이 백성들과 함께 이득을 다 같이 보기 위한 뜻이었다. 오늘날 어선(漁船)에는 장척(丈尺)에 따라 세(稅)가 있고 염부(鹽釜)에도 대소(大小)를 정하여 징세(徵稅)하고, 동·철(銅鐵)과 은·연(銀鉛)에도 모두 징수하고 있으며, 민결(民結)과 신포(身布)에 이르기까지 정세(征稅)하지 않는 이득이 없게 되고 정각(征榷)하지 않는 일이 없게 되었다. 이는 신포(身布)를 감해 주고 대신으로 보충하는 수를 하는 일에서 연유하게 된 것이니, 선왕(先王)들의 뜻이 또한 어찌 그만둘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한 것이겠느냐? 이러므로 선왕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균역(均役) 한 가지 일은 곧 나의 사업(事業)이다마는 그래도 인정(人情)에 잘 맞게 되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으니, 마땅히 일을 주간(主幹)할 신하들의 자손이 흥(興)하게 되는지 쇠(衰)하게 되는지를 살펴보아 착한 일인지 착하지 못한 일인지를 증험하겠다.’고 하셨던 것이다. 거룩하신 성인의 말씀이셨으니 오직 과인(寡人)은 다만 마땅히 그대로 준수(遵守)해 가고 잃어버리지 않아야 할 일이다. 이것이 이른바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 둘 수 없다.’는 것이다.
갖추어져 있는 규례(規例)를 들어 말하건대, 달마다 회계(會計)를 하게 되어 있고 해마다 감부(勘簿)를 하게 되어 있음은 미려(尾閭)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관세(官稅)를 혁파하고 공상(貢上) 명목(名目)을 감하였음은 절생(節省)을 힘쓰기 위한 것이다. 이는 모두가 미세한 일인 것이니 어찌 재용(財用)의 넉넉함이 있게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근본을 힘쓰려고 한다면 어찌 그만한 방도가 없겠느냐? 그러기에 ‘재화(財貨)를 생산하는 데 큰 방도가 있나니, 생산하는 사람은 많고 소비하는 사람은 적으며, 일을 하는 자는 빨리 하고 쓰는 자는 천천히 한다면 재물이 항시 풍족하게 된다.’는 것이니, 그렇지 않겠느냐?

[결론:경장(更張), 소강(小康)]

대저 총합(總合)하여 말한다면 당면한 지금의 폐해는 한 가지만이 아니다. 비유하건대, 마치 큰 병이 든 사람이 진원(眞元)이 이미 허약하여 혈맥(血脈)이 막혀버리고 혹이 불거지게 된 것과 같은 꼴이다. 기강(紀綱)이 문란해져 당폐(堂陛)가 존엄(尊嚴)해지지 못하고, 언로(言路)가 막히어 강직(剛直)한 말을 들을 수 없으며, 난역(亂逆)이 잇달아 생겨나 의리가 더욱 어두워졌으니, 무어 위태한 증상(症狀)이 조석(朝夕) 사이에 박두해 있는 상황이 아닐 수 없는데도, 이번에 특별히 네 가지 조목을 들게 된 까닭은 진실로 방본(邦本)을 굳건해지게 하지 않을 수 없어서이다. 근본이 굳건해지게 하는 것은 민생에게 있고, 민생들을 배양(培養)하는 것은 먹을 것에 달린 것인데, 먹을 것이 족해지면 교육해야 하고 이미 교육하면 반드시 경계하여 보호해 주고 협조하여 유익하게 해 줄 것이니, 이것이 방가(邦家)를 보존하는 대본(大本)인 것이다.
아! 시험삼아 오늘날의 국가 사세를 보건대, 경장(更張)한다고 해야 하겠느냐? 인순(因循)하고 있다고 해야 하겠느냐? 큰 집이 기울어지게 되면 하나의 목재(木材)로는 지탱할 수 없는 것이고, 온갖 내가 터지게 되면 쪽배로는 막기가 어려운 것이다. 삼대(三代) 시절의 제도는 비록 졸급하게 복구(復舊)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소강(小康)의 다스림도 또한 기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증세에 대처할 약제(藥劑)를 알지 못하여 손을 댈 방법을 모르고 있으니, 어찌 뜻이 있으면서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또한 어찌 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핑계할 수 있는 것이겠느냐? 생각이 이에 이르게 될 적마다 과인(寡人)의 마음이 진실로 근심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는 모두가 과인의 뜻이 확립되지 못해서이고 과인의 학문이 이루어지지 못해서이니, 진실로 허물을 잡아내기로 한다면 오로지 나 일인(一人)에게 달려 있게 된다. 아! 임금은 마땅히 말을 간단하게 해야 하는 법인데, 이처럼 그칠 줄 모르고 순복(諄複)하게 되는 까닭은 자세하게 이르려고 하여 말이 번거롭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소이(所以)로 선왕(先王)의 대도(大道)를 강구(講究)하고 선왕의 구장(舊章)을 수복(修復)하여, 우리 선왕께서 부여하신 책임을 저버리게 되지 말아야 하겠기에, 함께 다스려 가는 여러 현명한 사람들에게 바라는 바가 깊다. 아! 너희 조정에 있는 군료(群僚)들은 혹시 과인의 분부를 공언(空言)으로 여기지 않고 국가 일을 걱정하기를 가정 일처럼 하여 앞에 말을 한 실속을 힘쓰는 방법으로써 나 과인을 계적(啓迪)해 가야 하지 않겠느냐?”
하였다.
선포(宣布)가 끝나고, 동·서반(東西班) 및 시위(侍衛)하고 있는 제신(諸臣)과 위졸(衛卒)에 이르기까지 생각하고 있는 바를 모두들 진주(進奏)하도록 명하매, 영의정 김상철(金尙喆)은 수령(守令)에 초사(初仕)하는 자를 잘 선택하라 청하고, 좌의정 정존겸(鄭存謙)은 제도(諸道)에서 세초(歲初)에 인재를 추천하되 전조(銓曹)를 선칙하여 검토해서 임용(任用)하기를 청하였으며, 우의정 서명선(徐命善)은 삼관(三館)의 참상(參上)이 적체(積滯)되어 있으니 전조로 하여금 소통(疏通)시키는 정사(政事)를 힘쓰게 하기를 청하였고, 예조 판서 이경호(李景祜)는 본조(本曹)에서 전후에 등록(謄錄)해 놓은 것을 모아서 한 가지의 서책(書冊)으로 만들어 고거(考據)에 대비(待備)하게 하기를 청하였으며,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구선복(具善復)은 각도(各道)의 도신(道臣)과 수신(帥臣)으로 하여금 속오군(束伍軍)을 단속하는 병정(兵政)을 이정(釐正)하게 하기를 청하였다.

 

 

 

이후 정조의 경장 개혁 중 군대겨혁, 신해통공, 화성건설은 성공을 하였고, 관료제개혁은 미흡, 노비혁마 및 서얼차별제는 미완으로 끝났다고 하며, 이중 신해통공 및 서얼차별제도에 대해 자세히 진단/비전/처방/결과의 순서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정조의 7대 연설문으로 1) 즉위윤음, 2) 탕평윤음, 3) 경장대고, 4) 신해통공윤음, 5) 화성축성중단윤음, 6) 오회연교, 7) -숙제- 라고 합니다. 다 ‘정조’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연설들이니 꼭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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